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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이 사교와 유흥의 장소였다고? 우리나라에 중국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82년부터다.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신식군대(별기군)와의 차별대우와 민씨 일족의 전횡 등에 불만을 품고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 군대 4,000여 명이 인천을 거쳐 서울 용산에 주둔했다. 이때 군대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하기 위해 40여 명의 군역 상인도 함께 들어와 부대 인근에 자리 잡은 것이 우리나라 차이나타운의 기원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한 다음 해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狀租界章程)이 체결돼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의 약 1만 7,000㎟ 대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고,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들어섰다. 이때부터 인천 선린동 일대에 중국인들이 문을 연 요릿집이 생겨났다. 요즘에도 중국요리 식당으..
새똥 때문에 전쟁한 나라들/보험의 원조, 비스마르크/커피가 서양 한약? 새똥 때문에 전쟁을 벌인 나라들 새똥은 한때 전쟁 원인이 되기도 했다. 페루에서 구아노(Guano)라고 불리는 새똥은 질소와 인산 등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는 천연 비료로 이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이 몇 차례나 있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려면 땅속의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성분이 질소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땅에서 질소를 받아들여 세포와 조직을 만든다. 왜 구아노에는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을까? 이유는 이렇다. 페루 해안 쪽의 바다에는 남극에서 페루 북쪽으로 흐르는 찬 해류가 바다 밑의 영양분들을 뒤집어 올려서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플랑크톤이 많으니 물고기도 많고, 새도 많다. 그렇게 페루 해안에는 새가 몰리면서 새똥이 해안 절벽에 수천에서 수만 년간 쌓였고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
가발이 사치품? /유럽인은 왜 가발을 썼을까? /중절모 유행의 기원 조선 시대 여성들에게 최고 사치품이 가발이었다고? 조선 시대 여성에게 최고 사치품은 바로 가체였다. 가체는 요즘말로 하면 가발인데, 정확히는 머리카락에 덧붙이는 장식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들은 머리에 가체를 얹어 머리카락을 더욱 풍성하게 보이도록 했다. 처음엔 왕실과 상류층만 가체를 사용했다. 당시 기술로는 진짜 사람 머리카락으로만 제작되었기에 아주 비쌌다. 특히 조선 시대는 예의범절상 머리카락을 함부로 자르지 않았던 시기라서 가체 자체가 무척 귀했다. 그러다 조선 후기가 되자 서민도 가체를 즐겨 착용하기 시작했다.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서민의 경제력이 커져서였다. 가체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기록을 보면 영조(1694~1776) 때 쌀 한 가마의 값이 3냥이었는데 가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