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인문 역사

(31)
서양생활사 - 용변의 위생과 에티켓 중세 유럽의 용변 비위생 로마제국 멸망으로부터 야만인들이 침입해서 타일 깔린 목욕탕과 테라코타 수로를 모두 파괴했던 중세 후기까지 목욕과 일반적인 청결함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당시 정통적인 기독교 입장은 육체의 모든 양상을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몸을 다 드러내 놓는 전신 목욕은 유혹을 일으키기 때문에 죄라고 여겼다. 이러한 견해가 거의 대부분의 유럽에 퍼졌다. 침례를 받을 때 물에 몸을 담궈 목욕하는 것 외에는 거의 목욕을 하지 않았다. 부자들은 몸에다 향수를 뿌렸지만 가난한 사람들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공용이든 사용이든 목욕하는 것 자체가 없어지면서 실내 화장실을 만드는 기술의 세련됨도 사라지고 말았다. 뒷간, 야외변소, 요강이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다..
서양생활사 - 사우나 로마시대 사우나 목욕을 사교적인 행위로 만든 사람들은 기원전 2세기 경의 로마인들이었다. 그들은 오늘날 가장 사치스럽고 비싼 헬스 클럽과 맞먹을 거대한 공중 목욕탕 단지를 건설했다. 사치와 레저를 즐기던 로마인들은 이 사교 목욕탕에 정원, 상점, 도서관, 운동실, 그리고 시를 읽기 위한 라운지까지 갖추었다. 예를 들면 카라칼라의 목욕탕은 로마인들에게 다양한 건강과 미의 옵션을 제공했다. 어느 거대한 단지에는 바디 오일을 바르고 때를 미는 살롱, 열탕, 온탕, 냉탕, 사우나실, 머리 감고 향을 바르고 곱슬거리게 하는 곳, 매니큐어 가게, 운동실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화장품과 향수도 살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화장을 하고 나면 로마 귀족은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강의실에 들러 철학..
서양생활사 - 수세식 화장실 역사상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 서양에서 남자들은 '어디서 손을 씻죠?' 라고 묻고, 여자들은 '코에 분 바를 장소가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 학교 다는아이들은 '좀 실례해도 될까요?' 라고 더듬거리며,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변소(comfort station)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하며, 영국인들은 이곳을 'WC'라고 부른다. 물론 이 모든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은 가장 가까운 화장실 위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화장실과 화장실에서 행하는 육체적 기능을 지칭하는 데 필요한 수십 가지 완곡어법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비단 현대의 서양 예절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격식을 그다지 차리지 않았던 중세에도 성과 수도원에서 '필요한 곳' 이라는 표현을 썼다. 16세기 학자이자..
서양생활사 - 고무호스 오늘날 물뿌리개는 실내에서 작은 식물에 물을 줄 때만 쓰인다. 이때 물뿌리개에 물을 계속 채우는 일은 지겨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무 호스가 개발되기 전에는 크기에 관계없이 잔디, 화단, 채소밭에 물을 줄 때 언제나 물뿌리개를 사용했다. 고무호스와 소방호스는 시간을 절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조된 최초의 고무제품이었다. 자동차 타이어나 비옷이 나오기 전이었다. 그리고 고무호스 때문에 고무산업이 생겨났다. 고무는 16세기 유럽에는 새롭고 신기한 물질이었다. 미국 인디언들이 만든 최초 고무공은 콜럼버스에 의해 스페인에 소개된 후 2세기 동안 많은 유럽 발명가들이 이 물질을 가지고 실험해 보았지만 실용적인 목적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의 고무는 추울 때는 부서지고 더울 때..
서양생활사 - 냉방시스템 공기 냉각 인공 냉장 수단은 없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건조하고 온화한 기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이용해서 얼음을 만들 수 있었다. 해질 무렵 이집트 여인들은 얕은 질그릇에 물을 담아 짚단 위에다 내놓았다. 수면과 그릇 측면으로부터 급격한 기화는 밤기온의 급강하와 함께 주위의 기온이 결코 빙점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았는데도 얼음을 얼게 했다. 어떤 때는 수면에 얇은 얼음막만 생기기도 했으나 건조상태와 밤기온의 조건이 좋을 때는 물이 얼어서 딱딱한 얼음판이 되었다. 이 현상의 원인은 낮은 습도와 기온을 내려가게 만드는 기화였다. 이러한 원리를 깨달았던 많은 고대문명에서는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집과 궁전을 냉방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2000년에는 부유한 바빌론 상인이 자신의 집에 세계 최초의 냉방 체계를 만..
서양생활사 - 유리창 유리 제조 기원전 400년경에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판유리를 유리창으로 사용했지만 온화한 지중해 기후 때문에 이것은 단지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유리는 주로 보석 가공 등 실용적인 목적에서나 사용되었다. 유리의 취입성형이 기원전 50년경에 발명되면서 고품질의 유리창이 가능해졌다. 로마인들은 가정과 연회실에서 쓸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술잔을 만드는데 이 기술을 사용했다. 고대 로마도시 유적에서는 많은 유리그릇들이 발굴되었다. 로마인들은 판유리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판유리 기술혁신은 훨씬 더 추운 독일 지방에서 중세초기에 일어났다. 서기 600년에 유럽 유리제조 중심지는 라인강가에 형성되었다. 유리 작업에는 엄청난 기술과 오랜 견습기간이 필요했고 이런 전제 조건들은 유리제..
서양생활사 - 비누&세제 & 표백제 비누와 세제 모든 세제는 비누라고 할 수 있지만 비누는 세제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구분은 세제가 없어서 비누 한 장으로 빨래를 하거나 머리를 감아 본 사람에게는 실용적인 면에서 사소한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것이다. 비누는 물에서 침전물을 형성하여 욕조 주위에 자극을, 유리컵에 흰 찌꺼기를 , 세탁기의 헹군 물에 끈적끈적한 거품을, 머리에 끈끈한 막을 남긴다. 게다가 보통 비누로 세탁한 옷은 다림질할 때 노란 얼룩을 만든다. 이러한 좋지 못한 특성은 3500년 동안이나 사용되어 온 비누가 물 속에 있는 광물질이나 산과 반응하여 씻겨 내려가지 않는 비용해 분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합성세제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890년대에 특별히 만들어졌다. 이것은 1차대전 중에 독일인들이 전쟁 중의 실용적인 ..
서양생활사 - 재봉틀 재봉틀 구멍 뚫린 바늘은 역사상 놀라울 정도로 오래 전에 등장했다. 4만년 전에 거주한 구석기 동굴에서 상아, 뼈, 해마이빨 등으로 만든 바늘이 발견됐다. 어떤 의미에서 바늘구멍 발명은 그 중용성에 있어서 불 발견이나 바퀴 발명과 맞먹는다. 불이 음식 습관을, 바퀴가 여행 방법을 바꾸었다면, 바늘은 옷 입는 방법을 바꾸었다. 오랜 구석기시대부터 1830년까지 사람들은 손으로 바느질을 했다. 숙련된 재봉사는 1분에 약 30바늘을 꿰맬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최초 재봉틀은 조잡하고 비효율적이긴 했지만 1분에 200바늘을 꿰맬 수 있었다. 간단한 한 줄 짜리 바느질을 할 수 있는 이 초기 재봉틀은 프랑스 리옹 출신의 재봉사 바르델레미 띠모니에가 만들었다. 재봉틀을 보고 너무나 마음에 든 정부는 곧 띠모니에에게..
서양생활사 - 다리미 다리미 적어도 2천4백년 전부터 주름 없고 깨끗한 옷은 세련됨과 깔끔함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아이템이 다리미다. 처음에 나온 다라미들은 모두 압력을 이용했다. 단지 몇 개의 다리미들만이 구김을 펴고 주름을 잡는 데 열을 사용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들은 '주름잡는 다리미' 에다 압박을 가했다. 이것은 밀방망이 같은 모양의 가열된 실린더바였는데 주름을 잡기 위해서는 이 방망이 다리미를 아마포 가운 위에다 굴렸다. 2세기 후 로마인들은 맹글(mangle)이라는 평평한 쇠방망이로 옷을 때려서 주름을 잡고 구김을 폈다. 이런 도구를 사용해서 다림질하는 것은 지루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 노예들이 했다. 전쟁을 많이 했던 10세기 북유럽 바이킹들도 구김이 없고, 주름잡힌 옷을 좋아했다. 그들..
서양생활사 - 카펫 쓸개, 빗자루 카펫 쓸개 진공청소기가 카펫으로부터 먼지를 빨아들이기 전에도 찌꺼기를 쓸어가는 기계식 카펫 쓸개가 있었다. 한참 전성기에 카펫 쓸개는 주부들을 빗자루의 약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눈부신 발견으로 여겼다. 수백만 미국 가정주부들에게 빗자루로부터 해방은, 미시간 주 출신의 한 부부가 1876년 카펫 쓸개를 발명하면서 도래했다. 당시 안나와 멜빌 비셀 부부는 그랜드 래피즈 시내에서 유리제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먼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두 사람은 유리 제품을 포장하는 먼지투성이 짚 때문에 고생했다. 취미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던 멜빌 비셀은 회전식 머리와 담을 통이 있는 쓸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가정용, 혹은 거리용 쓸개를 만들려고 한 사람은 비셀이 처음은 아니다. 비셀보다 무려 200년전인 16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