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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문 역사

서양생활사 - 냉방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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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 냉각

인공 냉장 수단은 없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건조하고 온화한 기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이용해서 얼음을 만들 수 있었다. 해질 무렵 이집트 여인들은 얕은 질그릇에 물을 담아 짚단 위에다 내놓았다. 수면과 그릇 측면으로부터 급격한 기화는 밤기온의 급강하와 함께 주위의 기온이 결코 빙점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았는데도 얼음을 얼게 했다. 어떤 때는 수면에 얇은 얼음막만 생기기도 했으나 건조상태와 밤기온의 조건이 좋을 때는 물이 얼어서 딱딱한 얼음판이 되었다.

 

 이 현상의 원인은 낮은 습도와 기온을 내려가게 만드는 기화였다. 이러한 원리를 깨달았던 많은 고대문명에서는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집과 궁전을 냉방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2000년에는 부유한 바빌론 상인이 자신의 집에 세계 최초의 냉방 체계를 만들었다. 해가 지면 하인들이 방의 벽과 바닥에 물을 뿌려서 기화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밤공기의 냉각과 합쳐져서 더위를 식혔던 것이다.

 

  기화를 통한 냉각은 고대 인도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밤마다 집안의 가장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 창에다 젖은 풀잎 매트를 걸어놓았다. 매트는 손으로 물을 뿌리거나 창 위에 매단 구멍 달린 통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게 해서 밤새도록 적셔 놓았다. 부드러운 더운 바람이 시원한 풀입 매트에 닿게 되면 기화를 촉진해서 실내 공기를 냉각시켰다. 어떤 때는 거의 30도나 내렸다.

공기파이프 냉방 시스템

 2천년 후 전화 전깃불이 현실이 된 후에도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만드는 단순하고 효과적인 수단은 여전히 기술의 손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큰 식당과 공공 장소에는 얼음과 소금 혼합물 속으로 공기 파이프를 지나가게 한 후 시원해진 공기를 선풍기로 순화시켰다.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체계를 사용한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극장은 하룻밤에 4톤의 얼음을 소비했다.

 19세기 기술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는 기온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무더운 공기에서 습기를 제거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것은 고대인들도 깨달은 문제였다.

 

    에어컨

에어컨디셔닝airconditioning이란 말은 실제직인 냉방체계를 만들 전부터 사용되었다. 이 표현은 1907년 미국 면 제조업 협회에서 섬유공장의 습도를 조절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던 스튜어트 크레이머라는 물리학자가 쓴 것이다.

공기에 일정한 양의 증기를 불어넣어 섬유 속에 있는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 그 당시에 컨디셔닝 디 에어(conditioning the air)라고 알려져 있었다. 크레이머는 동명사를 복합명사로 만들어 새로운 표현을 창조했고, 이 표현이 섬유업계 내에서는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야심만만한 미국 발명가 윌리스 캐리어가 1914년에 최초 상업용 에어컨을 만들었을 때 이미 거기에 붙일 이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윌리스 캐리어와 그의 에어컨

 벼락출세한 뉴욕 근교 농촌 출신으로서 코넬 공과대학 장학생이었던 윌리스 캐리어는 난방과 통풍 체계에 매료되었다. 1901년에 졸업한 후 1년이 지나 그는 브룩클린의 석판공이며 인쇄업자인 사람을 위해 처음으로 냉방 일을 떠맡았다. 인쇄업자들은 실내 온도와 습도 변화 때문에 항상 애를 먹어오던 터였다. 종이가 늘어나거나 줄었으며 잉크가 흐르거나 말라버렸고 색깔도 인쇄할 때마다 달랐던 것이다.

 

 재능있는 발명가였던 캐리어는 종래의 히터를 개조하여 찬물을 넣고 펜으로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키도록 만들었다. 그가 정말 천재성을 발휘한 것은 온도뿐만 아니라 공기 흐름도 세심하게 계산하고 조절하여 공기를 냉각시킬 뿐만 아니라 습기 또한 제거할 수 있도록 그래서 냉각을 가속할 수 있도록 한 점이었다. 이러한 합성 효과를 성취한 덕분에 그는 현대 냉방기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일단 기초가 놓여지자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에어컨 발명가 Willis Carrier

 1919년 최초 냉방시설을 갖춘 영화관이 시카고에서 개관됐다. 같은 해 뉴욕의 에이브라햄과 스트라우스는 최초 냉방시설을 갖춘 백화점이 되었다. 캐리어는 1925년 뉴욕의 리볼리 극장에 133톤짜리 에어컨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새로운 돈벌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냉방시설을 관객들이 너무나 좋아하게 되자 1930년 무렵에는 미국 전역에서 300개 이상의 극장들이 영화 자체보다 더 큰 글자로 냉방 시설이 되어 있음을 광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운 날에는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피서를 하러 영화관에 몰렸다. 

 

 1930년대 말에는 가게와 사무실 건물들에서 냉방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여서 냉방 시설비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사람들에게 일하러 가는 새로운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비서, 기술자, 점원 그리고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왜냐하면 집에서의 냉방은 아직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재 윌리스 캐리어의 에어컨 발명은 지금도 세계인의 무더위를 잡는 소중한 인류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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