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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문 역사

서양생활사 - 카펫 쓸개,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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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펫 쓸개

진공청소기가 카펫으로부터 먼지를 빨아들이기 전에도 찌꺼기를 쓸어가는 기계식 카펫 쓸개가 있었다. 한참 전성기에 카펫 쓸개는 주부들을 빗자루의 약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눈부신 발견으로 여겼다.

 

 수백만 미국 가정주부들에게 빗자루로부터 해방은, 미시간 주 출신의 한 부부가 1876년 카펫 쓸개를 발명하면서 도래했다. 당시 안나와 멜빌 비셀 부부는 그랜드 래피즈 시내에서 유리제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먼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두 사람은 유리 제품을 포장하는 먼지투성이 짚 때문에 고생했다. 취미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던 멜빌 비셀은 회전식 머리와 담을 통이 있는 쓸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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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혹은 거리용 쓸개를 만들려고 한 사람은 비셀이 처음은 아니다. 비셀보다 무려 200년전인 1699년에 벌써 에드문드 헤밍이라는 사람은 '런던 거리를 쓰는 새로운 기계'로 영국 특허를 받았다. 말이 끄는 마차 바퀴에 연결된 커다란 원형 붓으로 된 이 기계는 너무나 많은 먼지를 피워 올려서 기계가 청소를 하고 지나가는 거리 주민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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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작은 모델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특별히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비셀의 카펫 쓸개는 먼지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위험하다고 의학계에서 지적한 역사적인 시기에 등장했다. 파스퇴르는 질병의 병균이론을 주장하면서 '공기 속에 있는 먼지가 박테리아를 옮기는 주범'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공기도 물처럼 더럽혀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위생을 혁신하고 있었다. 의학적 분위기가 개인과 가정의 위생에 콤플렉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셀의 쓸개는 미국과 유럽에서 너무나 널리 애호되어서 1890년에는 '카펫을 비셀하다(Bisselling the carpet)'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버킹엄 궁전을 청소하기 위해서 비셀을 주문했고, 터키 왕과 아라비아 왕들도 오리엔탈 카펫을 청소하기 위해 비셀을 주문했다. 그러나 마침내 비셀이 빗자루를 사라지게 했던 것처럼 진공청소기가 비셀과 그 아류들을 사라지게 했다.  

 

     빗자루와 풀러 브러시맨

20세기에 와서 합성수지가 개발될 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되던 빗자루와 브러시는 단지 깔끔하다뿐 원시인들이 가지를 꺽거나 옥수수 단을 잘라서 손잡이에 묶어서 쓰던 빗자루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1900년대 초에 빗자루 산업을 강타한 한 가지 변화가 풀러 브러시맨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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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칼 풀러는 1903년 캐나다 동남부의 노바 스코시아 반도에서 미국으로 왔다. 그의 전재산은 75불과 성경뿐이었다. 그의 약점은 백일몽을 꾸는 것과 무책임한 성격이었다. 3곳의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풀러는 보스턴 전철의 차표 수집원으로 치직했으나 재미로 기차를 몰다가 부순 후 또 해고되었다. 그 후 그는 말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말잡이 자리에서도 해고되었고, 계속 소포를 잃어버려서 배달원으로도 해고당했다. 결국 그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겨 1905년에 집집마다 다니며 청소용 브러시를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Alfred Carl Fuller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의 셋방에서 그는 19세기 후반 주택의 구석구석을 쓰는데 이상적인 철사와 털 브러시를 밤에 만들에 낮에 팔았다. 이 브러시는 한 개에 50센트씩 팔렸다. 놀랍게도 그는 세일즈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1910년에는 자기 제품을 판매할 25명의 직원까지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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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가 진공청소기 열풍이 빗자루와 모든 쓸개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나 브러시와 빗자루 산업측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집안 꾸미기 리뷰House Furnishing Review 1919년 7월호는 가정주부들이 그동안 '쓰는 것은 고역이다' 라는 세뇌를 당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이 잡지는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이 집안일, 특히 쓰는 일을 해야한다고 의사들이 여러 번 충고했다' 고 역설했다. 그리고 '쓰는 것은 매우 이로운 운동이다' 라고 끝맺었다. 교양 있는 여자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하고 심술궂은 노파들만이 빗자루를 고집한다는 당시의 생각을 희석시키기 위해 빗자루 회사들은 '빗자루로 쓸면서도 여전히 예쁘군요'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편 풀러는 사업을 확장해 온갖 집안 청소용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다양성 때문에 회사는 용케 버텨나갔다. 1943년에 알프레드 풀러가 은퇴할 때는 때에는 년간 판매액이 1천만 달러에 달했고 풀러 브러시 맨은 미국 풍경의 낯익은 한 부분이 되었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진공청소기를 쓰는 것이 당연히 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병을 예방한다느니 예쁘다느니 하는 아무 근거없는 말장난 마케팅으로 용케도 사업을 잘 이어간 영약한 마케팅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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