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용이 서양에서는 드래곤에 해당된다. 용은 실체가 없는 상상의 동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영물로 여긴다. 용은 초능력을 지녔다는 상징성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인명, 지명에 많이 쓰였다.
서양의 드래곤은 이러한 동양 용의 영물,신성한 영물과는 사뭇 다르다. 서양인에게 드래곤은 대부분 사악한 괴물이거나 악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즉 동양 용은 영물, 서양 드래곤은 괴물로 그 차이가 크다.
동양에서 용은 어딜가나 존재한다. 동남아는 일찍부터 중국인들이 많이 진출해서 문화권을 형성한 까닭에 그들의 용은 중국과 비슷하다. 다만 용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나 형체 등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 중국,일본에서는 고대부터 용이 하늘의 뜻을 실행하고 비를 내리게 하는 초자연적 존재다. 또한 풍요와 미래를 상징하는 유익하고 긍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봉황과 함께 제왕의 상징이기도 했다. 동양에서 용의 형상은 역시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시대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그 역사가 매우 긴 만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히 구체화되고 서로 비슷한 형상이 되었다.
동양에서 용의 형상은 한나라 이후에 구체화되어 대체적으로 용의 각 부위마다 낙타, 사슴, 토끼, 소, 뱀, 조개, 잉어, 매, 호랑이 등 아홉 가지 동물이 합쳐진 형상이다. 머리 한가운데는 척수라는 융기된 부분이 있는데 그 때문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으며 입가에는 긴 수염이 있다.
용의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고 하나의 아주 큰 비늘을 중심으로 반대 방향에 49개의 비늘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역린이라고 한다. 용은 이 역린을 건드리면 고통을 느껴 크게 분노하면서 그 비늘을 건드린 자를 물어 죽인다고 한다. 그래서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용의 형상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용의 턱 아래에 있는 여의주다. 말뜻 그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는 구슬이다. 그래서 용의 영의주는 만사형통의 상징이기도 하다.
용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약 3500년 전인 상(商)나라 때다. 상나라는 신화적인 요소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견해가 양립하는 국가다. 한자 龍자도 신화나 전설 속에 나타난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용에 대한 전설에 따르며, 그 무렵에 실제로 존재했던 대형 파충류의 일종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상나라 시대에 용에게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갑골문자가 있었듯이,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용이 차츰 신격화하면서 비와 구름을 자유자재로 불래낼 수 있는 초능력의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낼 때는 의례적으로 용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춤을 추는 등 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용은 만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을 지배하는 水神으로 추앙받았으며, 종교에도 스며들어 불교에서는 용을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여겼다. 또한 민간에서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존재,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존재로 신격화되고, 으뜸 또는 최고 상징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용과 관련된 숱한 전설과 설화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용이 신성한 이미지를 갖자 역대 제왕들이 봉황과 함께 용을 임금의 상징으로 이용했다. 건축물, 기념물, 기물, 의상에 이르기까지 용은 군주의 상징이 됐다. 그에 따라 임금이 입는 정복은 곤룡포 또는 용포라고 했고,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의자는 용상이라고 하는 등 제왕과 관련이 있느 모든 것에는 용을 넣어 임금이 용이라는 이미지를 씌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주의 상징이라기보다 평민들이 풍요와 만사형통의 상징, 홍수나 가뭄을 해소해주는 수호신이나 물의 신, 으뜸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조선시대는 군주의 상징으로 용의 형상이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세종 때부터는 중국 황제들이 조선 임금들에게 곤룡포 등의 의상을 보냈으며 이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세종 때는 처음으로 한글을 이용해서 성군의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용비어천가가 그것이다. 이 노래의 첫머리를 요즘말로 옮기면,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로 시작한다. 곡목에도 용이 등장하고 가사에도 용이 등장한다. 용과 같은 성군이 나서 백성들이 큰 복을 누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용은 제왕의 상징보다 평민들이 숭배하고 민간신앙을 통해 신격화했으며 만사형통, 부귀영화, 가내평안, 횡재,인생역전 등 소원성취의 상징이 됐다. 또한 가장 뛰어난 인물, 탁월한 능력, 큰뜻을 이루는 성공, 으뜸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용이 쓰였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물을 지배하는 수신으로서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숭배했다.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용에게 제사를 지냈고, 어부나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안전하게 항해하려고 용에게 빌었다. 마을에서는 명절 등 특별한 날에 농악대가 마을을 돌며 풍요와 안녕을 비는 풍속이 있는데 반드시 마을의 공동우물을 찾아가 샘울이 잘 나오도록 용에게 빌었다.
이러한 용에 대한 환상이 용왕을 탄생시켰다. 용왕은 용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용들의 왕은 아니다. 용왕도 초자연, 초능력의 존재지만 용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민담이나 전설에서 용왕은 바다속 궁궐에 산다. 신하도 있고 궁녀들도 있다. 궁궐은 지상에서 임금이 거처하고 정사를 돌보는 보편적인 궁궐과 다름없다. 용왕의 형상도 대부분 용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다. 용왕은 바다를 지배하고 물을 지배한다. 홍수나 가뭄,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고 해산물을 많이 잡게 해달라는 제사는 용에게 기원하기보다 좀 더 구체적 대상인 용왕에게 기원한다. 용왕굿, 용신제, 기우제, 풍어제 등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은 용이 아니라 용왕이다.
중국에서 용왕은 바다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동서남북 사방의 바다에 저마다 다른 용왕이 있다고 상상했다. 동해는 청룡, 남해는 적룡, 서해는 백룡, 북해는 흑룡이 지배한다고 상상하여 그들을 사해용왕이라고 했다. 중국 각지에는 용왕을 모신 사당도 있다. 용왕은 불교와도 관련이 있어서 불교에서 민간으로 전승됐다는 견해도 있다.
판소리 열 두 마당의 하나인 수궁가에도 용이 나온다. 심청전에도 심청이 용왕에게 희생제물로 바쳐진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태조 왕건이 용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서쪽바다 용왕이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에게 '동방의 왕이 되려면 세울 建자를 붙인 이름으로 손자까지 3대를 거쳐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 그에 따라 작제건은 아들의 이름을 용건으로 지었고, 용건도 아들의 이름을 건이라고 지었다. 왕건의 할아버지 이름이 작제건이듯 그 당시 뚜렷한 성이 없다가 왕건의 중국 성씨인 왕씨를 빌려와, 아버지를 고려 시조로 모시고자 이름을 왕륭으로 바꿨다는 일화도 있다.
왕건 할아버지 작제건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작제건은 중국 당나라 7대 황제인 숙종의 아들인데 아버지를 찾으러 당나라로 가던 길에 요괴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용왕을 발견하고 요괴와 싸워 물리친다. 용왕은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자신의 딸을 작제건과 결혼시켜 용건을 낳았고 용건이 고려 태조 왕건을 낳았다는 설화다.
이렇듯 용은 물을 지배하는 수신, 은혜에 보답할 줄 알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밀접하고 친근한 인격적 존재인 용왕, 인간의 미래를 암시하고 점지하는 기능을 갖춘 존재로 믿었다. 용왕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 용꿈을 꾸게 하는 미래 대한 기대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용이 영어로는 드래곤dragon이다. 그리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원래 의미는 '큰 바다뱀'이라고 한다. 따라서 드래곤은 거의 대부분 뱀의 형태가 기본이며 동양과 달리 박쥐 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리가 네 개이며 비늘을 칼로 벨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고, 꼬리에는 가시가 달려있다. 동양 용처럼 입에서 불을 뿜어대기도 하는데 대부분 흉측한 괴물의 형상이다. 서양에서 뱀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사악한 동물의 상징이다. 거기에 흉측한 괴물의 모습까지 더해져 신화시대부터 반드시 퇴치해야 할 사악한 괴물이었다. 그리스 산화에서 제우스 신이 물리친 거대한 뱀 혀상의 괴물 티폰, 역시 머리가 아홉 개인 뱀 형상의 히들를 비롯해서 여러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서양 용이다. 히타이트, 수메르, 이집트 신화에도 사악한 드래곤이 나온다.
카드모스 신화에 나오는 드래곤을 보자. 카드모스는 지중해 연안의 강국인 페니키아 왕자였는데 제우스에게 납치된 여동생 에우로페Europe를 구해오라는 부왕의 명령을 받고 고국을 떠난다. 그러나 동생은 찾지 못했고 에게해 북부에 있는 한 섬에 정착해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곳에서 카드모스는 드래곤과 맞서 싸워서 죽인다. 그는 죽은 드래곤의 이빨에서 솟아오른 병사 다섯 명과 힘을 합쳐 고대 그리스 최초의 강력한 도시국가인 테베를 건국한다.
이후 서양에서 드래곤에 대한 증오는 기독교가 탄생하면서 드래곤을 3대 적그리스도의 하나로 지적하면서 더욱 악마와 같은 존재, 악의 상징으로 굳혔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계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 원죄를 저질러 쫓겨나게 된 것이 뱀의 유혹때문이었다. 따라서 뱀을 괴물로 형상화한 드래곤은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와 함께 기독교에서 지적하는 이단 종교, 다신 숭배하는 종교, 거짓된 선지자, 우상숭배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 등이 모두 타도해야 할 용과 같은 괴물이며 악마들이었다.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전쟁터에 나가 적과 맞서는 방패에는 적군에게 겁을 주기 위해 갖가지 드래곤을 그려넣었다.
유럽 신화들에서 드래곤은 대개 영웅들에 의해 제거된다. 이것은 뱀이 여성의 상징인 것과 관련 있다. 모계사회가 부계 사회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독교 역시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에 따라 유일신인 하나님과 맞서는 적그리스도를 짐승, 괴물로 보고 그 상징으로 뱀을 괴물화한 드래곤을 적으로 규정한다. 기독교에서 드래곤은 성인이나 순교자들에게 항상 굴복한다.
동양과 성양의 이러한 용,드래곤에 대한 인식 차는 신에 대한 관념 차이와 관련이 있다. 서양에서 신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신과 맞서는 존재는 모두 괴물이 되고 악마가 되며, 그 괴물 또는 악마는 드래곤으로 상징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온갖 드래곤과 괴물은 마침내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 의해 제거된다.
동양 신화에도 신이 등장하지만 신의 역할은 대부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고 소멸된다. 지상에도 신이 있지만 천계 신과는 달리 역할과 기능이 제한적으로 분화돼 있다. 그리고 인간이 중심이다. 그러나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부분에서 초능력을 지닌 괴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서양 괴물만큼 악독하지는 못하다. 능력에 한계가 있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동양에서 용은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극복해주는 영물로서 환상을 지닌다. 반면 서양 드래곤은 악의 화신으로서 적그리스도로서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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