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666은 흔히 악마의 숫자로 알려져 있고 공포 영화 오멘에서 주인공의 머리에 박한 숫자로 기독교에서 의미심장한 숫자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로, 그 해석을 두고 다양한 견해와 주장들이 논쟁중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유목민족으로 떠돌이 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영토도 없었고 결집된 세력도 없었다. 그래서 유럽과 중동에서 여러 민족들이 나라를 세우면서 정처없이 떠돌며 핍박받았다. 유일신 사상이기 때문에 다신교인 주변 민족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고대 이집트를 탈출하는 엑소더스와 오랜 세월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에 이르러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에 정복당해서 또다시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 무렵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구원을 설파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열광했으나 핍박과 박해는 피할 수 없었다. 마침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기독교가 탄생했으나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더욱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도들에게 주변은 온통 적이었으니 기독교도들에겐 敵그리스도로 생각했다.
신약 요한계시록 13장 17~18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이 표시는 곧 짐승의 이름이니 그 이름의 수이니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이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어찌보면 암호 같고 상징 같기도 하다. 666이 짐승의 이름이라니 어떤 짐승의 이름이란 말인가? 또 그 숫자가 사람의 수라니 어떤 사람들이 666명이라는 말인가? 고대 히브리어로 된 요한계시록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착오와 오역도 많았다니까 더욱 해석이 어렵다.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 하겠다.
고대 히브리와 그리스에는 통상적으로 문자를 숫자로 표시하는 사용법이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첫 글자는 1, 두번째 글자는 2, 세 번쨰 글자는 3과 같은 방식으로 숫자를 풀면 문자가 되고 그 단어에 감춰진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제법 널리 사용됐으며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숫자 해석법도 있었다고 한다.
문자를 일부러 숫자로 바꿔서 표기한 것은 기독교가 태동했을 때 로마 제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의 이름을 감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성서학자들은 그러한 방식에 따라 666을 문자로 풀이하면 고대 로마제국의 폭군이었던 네로 황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숫자 616을 풀이하면 역시 로마 폭군이었던 칼리굴라 황제가 된다고 한다. 모두 기독교를 가혹하게 탄압했던 폭군들로, 666은 그들을 '짐승 같은 인간'이라는 뜻에서 '짐승'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모두가 지지하진 않는다.
또한 666이라는 숫자 자체를 놓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서양에서는 숫자 7을 좋아하며 완전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고 7일째는 쉬었기 때문에 일곱 번쨰 날은 '안식일'이 되고 있고, 근래에 와서 7번째 날이 쉬는 날인 일요일이 된 것도 이러한 기독교 신앙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숫자 6은 숫자 7에서 하나가 부족하고 못미치는 숫자로, 6을 세 번 강조한 666은 불완전의 최대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666은 하나님을 거짓으로 내세운 사이비종교나 이단,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다신교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들이야말로 타도해야 할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666은 결코 7이 될 수 없는 불완전의 집합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 모든 인간들을 지각이 모자라는 짐승으로 상징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우상숭배자, 무신론자들은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그와 함께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수가 666이며 그것이 곧 사람의 수라 했으므로 반드시 맞서 싸워 물리쳐야 할 대표적인 적그리스도가 666명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당시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던 로마 황제들을 비롯해서 666명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666을 놓고 가장 논란이 있었던 시기는 중세였다. 당시 기독교는 유럽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위력을 바탕으로 몹시 부패하여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16세기 초 독일의 성직자이자 신학자인 마틴 루터가 앞장선 종교개혁이 얼어나 결국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갈라지게 됐다. 이러한 대격변의 과정에서 마틴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정점인 교황이 바로 666이라고 공격하고, 교황과 카톨릭교회는 마틴 루터야말로 666이라며 서로 맹렬하게 공격했다.
마틴 루터가 교황이 바로 666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일컫는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를 숫자로 풀면 666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교황을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부른다며 오히려 마틴 루터가 하나님을 비난하는 적그리스도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논란은 그 뒤에도 꾸준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개신교 일부 성직자나 극단주의자들이 여전히 카톨릭을 666이라며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 물론 666 해석에 대해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 무신론자들 가운데는 그것은 종교의 협박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강요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의 영적 세계를 관장하는 종교에는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밀 유지가 중요한 군사활동이나 첩보활동 등에서는 암호 사용이 보편적이다. 그 가운데 난수표가 있다. 1에서 9까지의 숫자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암호가 난수표다. 그 숫자배열을 알 수 있는 특정한 당사자들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한 난수표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갖가지 특정한 숫자에 짓눌려 살고 있다.
휴대폰과 E메일에도 비밀번호가 있고 신용카드, 은행 통장, 현관문을 여는 도어록에도 비밀번호가 있다. 비밀번호를 어쩌다 까먹으면 아주 골치아픈 사태가 발생한다. 주민등록번호, 집주소, 전화번호,차량번호, 은행 계좌번호 등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숫자들이 많다. 이렇게 숫자의 공포와 공해 속에서 사는 현대인은 어쩌면 666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는 커녕 또 다른 의미의 666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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