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 지역을 막론하고 고대신화에는 신, 괴물이 등장한다. 신이 괴물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신이 괴물과 싸우고 인간이 괴물과 싸우기도 한다. 대개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능력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감히 신에게 맞서지는 못하나 인간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거의 모든 괴물들은 인간의 생명을 뺴앗거나 괴롭히고 큰 고통을 주는 악행을 하는데, 그 가운데서 여성인 메두사는 서양 괴물 전설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그 때문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메두사는 악녀의 상징으로 많은 문화예술의 소재가 되고 있다.
초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고르곤은 본디 혼자서 지하세계에 사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후기 그리스 신화에는 고르곤 3자매가 등장한다. 스테노, 에우리알레, 그리고 막내 메두사다. 사실 이들의 실체는 모호하다. 신은 아니지만 메두사를 제외한 두 언니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신적 능력을 지녔으며, 괴물이면서도 얼굴이 몹시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여성으로 묘사된다. 특히 메두사는 생명에 한계가 인는 인간 여성이다.
메두사는 원래 완벽하게 아름답고 뺴어난 미인이었으며, 아테나 신전에서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무녀였다. 아테나는 순결한 처녀 여신으로 전쟁의 신이자 지혜의 신이며 그리스 수호신으로 가장 추앙받는 여신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였으며 지금도 그리스 수도인 아테네가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아테나는 로마신화에서는 미네르바에 해당한다.
아테나 여신은 순결한 처녀였기에 신전에서 그녀를 모시는 메두사도 처녀였으며 평생 결혼할 수도 없고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미모가 빼어났던 메두사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의 미모와 머리카락이 아테나보다 더 아름답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며 이를 항상 자랑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최고신 제우스 신과 형제로 용모가 준수하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신이었는데 아테나 여신이 그를 흠모하여 짝사랑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아테나에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테나가 적극적으로 접근하자 포세이돈은 그녀를 떼어내려고 아테나 신전에서 메두사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졌다. 일부 신화와 전설에서는 포세이돈이 뺴어난 미모의 메두사를 우연히 보는 순간, 욕정이 솟구쳐 갑자기 달려들어 겁탈했다고 한다.
아테나로서는 더할 수 없는 수치였으며 굴욕이었다. 자존심을 크게 상한 아테나는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자신에게 모욕을 준 포세이돈에게 저주를 내리고 싶었지만 그는 신 서열 넘버2였기에 그럴 수 없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자기가 더 아름답다고 자랑한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렸다.
아테나의 저주는 끔찍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완벽한 미녀였던 메두사, 그녀가 자랑하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모조리 뱀으로 바꿔버려 머리에는 수많은 뱀들이 꿈틀거리게 했으며, 멧돼지 같은 몸통에 짐승처럼 날카로운 이빨, 멧돼지의 어금니, 튀어나온 눈, 사자코, 입에서 빠져나와 길게 늘어진 혀, 청동 손, 가랑이를 벌리고 누우면 말 암컷의 하반신이 되기도 하는 끔찍하고 흉악하고 더없이 혐오스러운 모습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하루아침에 최고 미녀에서 최악의 괴물로 변해버린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에서도 쫓겨나고, 큰 충격과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 정처없이 떠돌지만 그럴수록 점점 커지는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분풀이를 하기 시작한다.
그처럼 흉측하고 무섭고 혐오스런 괴물의 모습으로 어디에서든 불쑥 나타나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느닷없이 인간들을 궁지로 몰아 위기에 빠뜨리는가 하면,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은 돌로 변하게 한다. 언제 어느곳에 나타날지 모르고 불행하게도 메두사와 마주쳐 쳐다만 봐도 돌로 변해버리니 공포 그 자체였다.
당연히 메두사는 인간들에게 최악의 괴물이었고 최고의 악녀였다. 하지만 아테나 신의 저주로 괴물이 된 그녀와 맞서서 물리칠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메두사의 악행과 횡포는 갈수록 심해져, 온 세상이 공포에 빠진다.
그무렵,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미모가 빼어난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공주였는데 최고신인 제우스가 황금 비로 변해 몰래 접근하여 성관계를 가져 아들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화가 구스타프 클림프의 대표작 다나에가 바로 그녀와 제우스의 만남을 그린 것이다.
처녀인 다나에게 아이를 낳자 아버지은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우스는 분노해서 그녀와 아들을 함께 나무상자에 넣어 강물에 버렸는데, 어부였던 폴리덱테스의 동생이 그들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오랫동안 정성껏 보살폈다.
폴리덱테스는 다나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걸림돌이었다. 그는 페르세우스를 없애버리기고 마음먹고 궁리 끝에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메두사는 그 누구도 물리칠 수 없는 괴물이기 때문에 메두사와 맞서다가 돌이 되거나 죽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페르세우스는 아테나를 비롯한 신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메두사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자를 때 뿜어나오는 피를 본 포세이돈은 한때 자신을 좋아했던 여인의 최후가 측은하여 그 붉은 핏방울을 날개 돋친 하얀 말로 바꿔 페가수스라는 말이 탄생한다. 어떤 신화에서는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에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다고 한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폴리덱테스에게 가져가지 않고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고 천하무적의 괴물을 물리친 영웅이 됐다. 아테나 여신은 메두사의 머리를 자신의 방패에 붙였다. 그 뒤로 아테네 군사들의 방패에는 괴물 메두사의 얼굴을 새겨넣어 적들이 겁먹게 했다고 한다.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괴물들은 상상 속의 존재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그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담겨있다. 예컨대 아테나 여신이 메두사의 손을 청동으로 변하게 했다는 것은 그 시대가 청동기 시대였음을 나타내며, 메두사 목에서 쏟아진 핏방울을 포세이돈이 하얀 말로 탄생시켰다는 것은 그 무렵 그리스나 지중해 연안에 기마족들이 크게 진출했음을 알려준다.
메두사는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완벽한 미녀였으나 자신의 미모가 여신보다 아름답다고 뽐내다가 아테나 여신의 질투와 저주를 받아 가장 흉측하고 혐오스런 괴물이 되는데 이는 자신의 미모가 빼어나다고 해서 그것을 스스로 과시하거나 교만해지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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