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번
와이번(Wyvern)은 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생물로, 문장(紋章)이나 축제의 괴물 분장, 가게 간판 등에도 자주 출현한다. 유럽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괴물 중 하나다. 보통 용 대가리와 한 쌍의 날개, 두 다리, 도마뱀 같은 파충류 몸통을 하고 있으며 꼬리 끝이 마름모 형태를 띤다. 더 자주 보이는 모습은 꼬리 끝부분이 작살처럼 뾰족한 화살 모양이다. 바다에 산다는 상상 속 괴물 와이번은 꼬리 끝쪽에 지느러미가 달려 있다.
와이번은 '날개 달린 두 발 용' 을 가리키며 영국에서 시작했다. 영문명 Wyvern은 고대 영어 와이버wyver에서 유래했고, 이 와이버는 고대 프랑스어 wiver에서 기원했으며, 이는 다시 독사를 뜻하는 라틴어 비페르viper로 거슬러 올라간다. viper는 중세기 동물우화집에서 두 개의 다리와 두 개의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형상화되는데, 와이번은 이러한 형태를 그대로 계승했다. 영국에서는 날개 달린 두 발용과 네 발 용을 확실히 구분했지만,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용과 뱀을 구분하지 않다 보니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이런 생물은 모두 용이라 불렀다.
와이번은 유럽의 문장이나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데 약제사들은 와이번이 질병을 상징하며 의학의 수호신인 아폴론에게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아폴론이 델파이의 괴물 용 피톤(Python)을 물리쳤다는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거 잉글랜드를 통일했던 웨식스 왕국은 와이번을 깃발 휘장으로 사용했다.
크람푸스
크람푸스(Krampus)는 유럽에서 주로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악마다. 성 니콜라스와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 축제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또는 성 니콜라스의 날 전날 밤에 크람푸스의 밤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성 니콜라스와 달리 크람푸스와 관련된 전설은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동부의 바이에른 주,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남티롤(이탈리아 북부 볼차노 자치도를 가리킴)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 일부 지역에서 유행했다. 다만 크람푸스를 흉내 낸 복장과 풍습은 거의 모든 유럽 대륙에 존재한다. 심지어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흘러들어 가 그 지역 풍습과 결합하여 디아블로 같은 광란의 축제가 생기기도 했다.
크람푸스는 알프스 지역에서 유래했으며, 성 니콜라스 전설은 11세기 초에 독일로 전해졌다. 16세기 독일에서는 악마나 동물의 가면을 쓰고 성당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풍습이 있었다. 이 같은 분장은 본래 이교도에서 기원했는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악마와 동일시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크람푸스와 성 니콜라스를 연결하기 시작했고 둘은 겨울 축제 의식에 항상 짝을 이루어 함께 출현했다. 이때 크람푸스는 기독교의 악마와 같은 분장을 하고 쇠사슬을 두른채 방울을 달고 등장한다. 이런 모습은 교회가 악마를 제압했음을 뜻한다. 크람푸스 분장을 한 사람이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동작을 취하면 방울이 울린다. 크람푸스의 손에는 보통 자작나무 가지가 들려 있는데 고대 바이에른 주 등의 지역에서는 자작나무가 생식과 출산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작나무에는 암컷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아이를 낳거나 자작나무 구멍에서 아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크람푸스는 손에 자작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가 어린아이를 때리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 기독교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행동이다. 간혹 나뭇가지 대신 회초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외에 크람푸스는 손에 바구니를 들고 어깨에는 자루를 짊어진 채 등장하기도 한다. 착한 아이에게는 바구니 않에 들어있는 선물을 꺼내 주지만 나쁜 아이는 자루에 집어넣어 숨 막혀 죽게 만들거나 지옥으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성 니콜라스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건네주면, 크람푸스는 나쁜 아이에게 석탄을 주거나 회초리를 휘둘러 벌을 준다고도 알려졌다.
크람푸스와 관련된 의식은 20세기 초 정부가 금지했다가 20세기 말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는 지역마다 크람푸스와 관련된 다양한 복장이 쏟아지고 독특한 의식이 거행된다. 대부분 양가죽 외투를 걸치고 허리에는 방울을 단 채 목이나 팔다리는 쇠사슬로 묶인 모습이다. 머리에는 양뿔이 달려 있으며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또는 기다란 혀를 내밀고 있는 가면도 있다. 이들은 12월 5일 성 니콜라스의 날 전날 밤에도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광란의 행진을 한다.
그리핀
그리핀(Griffin)은 그리폰(Griffon , Gryphon)으로도 불린다. 이 명칭은 '굽었다' 또는 '걸리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 그리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핀 전설이 탄생한 지역을 고려한다면 전설이 아나톨리아를 거쳐 전해지면서 아나톨리아어에서 차용한 명칭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핀은 보통 사자와 독수리의 특징을 모두 지닌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이 동물이 무시무시한 굽은 부리를 갖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시도루스가 편찬한 '어원'은 그리핀이 조류인 동시에 네발짐승이며 사자 몸통에 독수리 날개와 얼굴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그리스신화에서 리파이오스 산 속의 황금을 지키는 괴수로 등장한다.
히포그리프나 페가수스, 유니콘 등을 먹이로 하는 사나운 육식조류다.
성체 그리핀은 어깨까지 높이가 5피트 무게가 50키로 이상이다.
가슴 위부터 앞다리는 거대한 독수리. 날개부터 부리까지 황금깃털로 덮여있다.
14세기 영국의 존 맨더빌이 불어로 기록한 동방여행기에 "그리핀의 앞쪽은 독수리,
뒤쪽은 사자를 닮았는데 사자 8마리를 합친 것보다 크고 독수리 100마리를 합친 것보다 힘세다"라고 기록했다.
기원전 3천년 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적과 고대 아시리아 조각에 등장한다.
이탈리아 중세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는 자신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에서 히포그리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후 설명이더해져 히포그리프는 그리핀과 말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리핀의 머리와 발톱, 날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전한다.
바트솔로뮤 앵글리쿠스는 저서 '사물의 성질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핀은 날 수 있는 네 발 달린 괴물로,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졌고 그 외 몸통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북쪽 맨 끝에 있는 히페르보레안 산에 서식하며 인간과 말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서운 존재다. 자기 둥지에 에메랄드를 가져다우어 산속의 모든 해로운 물질의 영향을 차단하고 아무도 둥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성 바르솔로뮤는 바트솔로류 앵글리쿠스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했는데 그리핀은 보석을 수집해 저장해두는 특성이 있다는 점만 추가 서술했다.
그리핀이 보석을 쌓아놓고 지킨다는 최초 기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온다. 이 책에서는 스키타이의 북쪽 리패아 산맥에 특이한 생김새의 종족이 사는데 이마 중간에 눈이 하나 달려 있다고 적혀 있다. 이들이 그리핀한테서 황금을 훔쳐낼 궁리를 하다 보니 둘 사이에는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핀이 황금이나 보물을 좋아한다는 전설은 스키타이족이 평소에 황금으로 그리핀 형상이 들어간 그릇을 제작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을 보고 그리스인이 오해했거나 혹은 스키타이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 때문에 일부러 그들을 황금을 훔치는 도둑으로 꾸며냈을 가능성도 있다.
플라비우스 필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저서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에서 그리핀이 황금을 어떻게 획득하는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이 괴물은 부리가 매우 단단하고 견고한데 그 부리로 금광을 캘 수 있을 정도다. 인도에 주로 서식하며 용이나 코끼리보다 강하지만 비행 능력에 한계가 있다보니 오랫동안 날지는 못한다. 발바닥에 붉은색의 얇은 막이 있으며 발을 움직여 공중으로 날아오르거나 싸울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는 마다가스카르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그리핀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쪽의 어느 작은 섬 앞에 이르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데 해류가 가로막기 때문이며 바로 이곳에서 그리핀이 출몰한다. 그들은 특정 계절에만 모습을 드러내는데 독수리처럼 생겼지만 훨씬 더 거대하다. 날개 길이가 30보, 즉 45.45미터에 이르며, 깃털 하나의 길이가 12보, 즉 18.18미터나 된다.
엄청나게 힘이 세서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채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떨어뜨려 죽여버린다. 섬 주민들은 이 괴물을 로크(Roc, Rcu, Rukh)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랍 전설에 나오는 거대한 새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로크는 다른 괴물새다. 중국에서는 이를 鵬이라고 옮겼는데 아마도 그리핀과 아랍의 로크가 어떤 관련성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의 탄생 지역 역시 서로 인접해 있다. 이 둘 외에도 유대교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새 지즈(Ziz),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안주, 그리스 신화의 피닉스, 아시리아 신화의 라마수, 이란 신화에서 천국의 새로 일컬어지는 호마, 그리고 인도 신화의 가루다까지 그 기원에서 어느 정도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맨더빌 여행기에는 그리핀이 사자 8마리, 독수리 100마리를 합쳐 놓은 것 보다 더 힘세며, 발톱은 소뿔을 연상케 할 만큼 크고 길어서 그 나라 사람들이 그것으로 술잔을 만들 정도라고 한다. 스웨덴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올라우스 마그누스 역시 그리핀을 언급했다. 이들은 북쪽 끝의 산속에 살면서 말과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리핀의 발톱으로는 술마시는 뿔잔을 만들 수 있는데 그 길이가 타조알 정도로 길다. 당시 사람들은 그리핀의 발톱에 병을 치료하는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유럽 궁궐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사실 그것은 영양의 뿔로 제작한 가짜였다. 그리핀의 깃털과 알 또한 신기한 효능을 발휘하는데 깃털은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준다. 알로는 술잔을 만드는데 사실 이는 그리핀 알이 아니라 타조알로 만든 가짜였다.
중세시대 전설에 따르면 그리핀은 평생 짝을 한 마리만 가지며, 그 짝이 죽더라도 절대로 다른 짝을 구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혼자 산다. 이런 습성 때문에 교회에서 재혼을 반대하는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비행 동물과 육지 동물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인간인 동시에 신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리핀이 문장에 쓰일 때는 사자와 독수리의 특징이 합쳐져 있다는 면에서 패기와 용기의 결합을 의미하고, 강력한 군사력이나 탁월한 지도력을 상징한다. 독수리 대가리에 사자 귀가 달렸거나, 깃털이 날카롭게 솟구쳐 있거나 뿔이 달린 모습도 보인다. 앞가슴에는 깃털이 풍성하게 돋아 있으며, 앞발이 독수리 발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날개가 없는 예도 있는데 15세기 이후 이러한 문장 형태를 알케 또는 키쏭으로 불렀다. 영국의 문장에서는 수컷 그리핀이 날개가 없으며 날카로운 깃털 가시가 몸통 전체를 빼곡히 덮고 있고 머리에는 뿔이 하나 달려 있다. 반면 암컷 그리핀은 날개를 달고 있는 모습으로 더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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