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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 귀신 요괴 괴물

치명적인 독을 뿌리는 뱀들의 왕, 바실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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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스크

바실리스크(Basilisk)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작은 왕'을 뜻하는 바실리스코스에서 유래했다. 작다고 한 건 몸길이가 숟가락 12개를 이은 정도밖에 안 되기 떄문이다. 왕이라 부르는 이유는 머리 위에 왕관을 연상케 하는 우뚝 솟은 하얀색 무늬가 있어서다. 이외에는 보통의 뱀과 큰 차이가 없다. 바실리스크는 뱀들의 왕으로 여겨지는데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뱀이 낳은 알을 수탁이나 두꺼비가 품어 바실리스크가 태어난다. 또는 수탉이 낳은 알을 뱀이 품었다고 정반대로 전하기도 한다. 중세기에 바실리스크는 닭의 특징을 더 많이 보이면서 거의 닭과 유사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바실리스크에 대한 최초 기록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바실리스크는 리비아 키레네 지방에 서식하며, 사람 손가락 12개 정도 길이에, 머리에는 왕관처럼 보이는 흰 반점이 있다. 바실리스크가 쉿쉿 소리를 내며 나타나면 모든 뱀이 꽁무니를 뺸다. 바실리스크는 다른 뱀들처럼 구불구불 가지 않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일직선으로 지나간다. 바실리스크의 몸에 닿기만 해도 혹은 그 숨결만으로도 근처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이 말라 시들고 바위가 쪼개진다. 로마인들은 사하라 사막이 본래는 초목이 울창한 비옥한 땅이었는데 바실리스크 때문에 사막으로 변했다고 믿었다.

 고대 로마 시인 마르쿠스 루카누스는 자신의 시에서 바실리스크의 강력한 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새는 바실리스크가 있는 하늘 위를 날아가기만 해도 그 독에 중독되어 떨어져 죽는다. 말을 탄 기사가 긴 창으로 바실리스크를 찌르면 그 독이 창을 타고 올라와 기사뿐만 아니라 말까지 한꺼번에 죽는다. 하지만 이런 바실리스크에게도 족제비라는 천적이 있다. 족제비는 운향이라는 약초를 사용하는데 운향은 바실리스크의 독으로부터 족제비를 보호한다. 족제비는 바실리스크의 둥지로 파고 들어가 바실리스크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가슴을 단단히 물고 절대 놓지 않는다. 바실리스크와 족제비의 이 같은 앙숙 관계는 코브라와 몽구스의 천적 관계를 그대로 옮겨운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바실리스크 전설에 여러 저자가 달려들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적 없는 내용을 덧붙였다. 에스파나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루스 때부터 바실리스크는 모든 뱀의 왕으로 묘사되었고, 영국의 역사가이자 철학자 베다는 수탉이 낳은 알에서 바실리스크가 탄생했다고 기술했다. 영국의 자연과학자 알렉산더 네캄은 바실리스크의 강력한 힘이 부패한 공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연금수사들은 바실리스크의 피에 인간의 피, 구리 가루, 비밀 제조법으로 만든 식초를 섞으면 구리를 스페인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독일의 스콜라 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바실리스크의 죽음 어린 눈빛을 언급하면서 그 외에 수탉이 낳았다거나 그 뼛가루가 은을 황금으로 변하게 한다는 등의 다른 전설은 모두 부인했다. 중세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는 바실리스크를 죽이는 방법을 기록해놨는데,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거나 또는 거울을 그 앞에 두어 스스로에게 도전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죽음의 눈빛을 응시하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실리스크는 전설 속에서 더욱 강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해갔다. 입으로는 불을 뿜어대고, 울음소리만으로 생명체를 죽게 하며, 물건에만 닿아도 그것을 지닌 사람까지 죽는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주술가인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립파는 바실리스크 전설을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바실리스크는 원래 중동 리비아의 키레네 지방에서 서식했는데 스페인의 칸타브리아 지방으로 옮겨왔다.

 고대에는 세계 이곳저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살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늙은 수탁이 죽기 전날 밤 자정에 보름달이 뜨고 공기가 청량하면 바실리스크 알을 낳고 죽는다. 알껍데기는 부드럽지만 무척 단단하다. 막 알을 깨고 나온 바실리스크는 불을 뿜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시선이 닿으면 사람이나 동물 모두 죽는다. 족제비만이 바실리스크와 맞서 싸울 수 있으며,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바실리스크는 죽는다고 한다.

 중세시대 전염병이 확산되자 병과 죽음을 상징하는 바실리스크 전설 역시 크게 유행하면서 사람들을 집단적인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교황 레오 4세 때 로마의 한 신전 근처에 있는 아치형 문아래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이 바실리스크의 냄새 때문에 전염병이 크게 확산했고 결국 교황 레오 4세가 기도로 바실리스크를 죽여 도시를 구해낸다. 1202년 비엔나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 혼절 사태가 벌어졌는데 추적 결과 한 우물에 바실리스크가 숨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발견 당시 바실리스크는 이미 죽은 상태였으며 사람들은 조각상을 세워 이를 기념했다. 1474년 스위스 바젤에서 막 알을 낳으려는 수탉을 사람들이 발견했다. 지방 당국은 이 수탉을 사로잡아 재판에 넘겼고 화형이 선고되었다. 화형을 집행하기 전 사람들은 망나니를 불러 이 수탉의 배를 갈랐는데  그 안에서 발육 상태가 각기 다른 3 개의 알이 발견되었다.

 15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생한 바실리스크 사건은 무엇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칼 만드는 사람의 5살 난 딸과 다른 여자아이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아이의 엄마와 하녀는 마을 곳곳을 샅샅이 찾아다닌 끝에 30년 전 허물어진 집의 지하실에서 두 소녀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하녀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녀는 용기를 내어 지하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지하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 엄마는 기지를 발휘하여 바로 따라 내려가지 않고 마을로 달려와 도움을 청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바르샤바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공기 중에 호흡곤란을 초래하는 가스가 원인일 거라면서 이렇게 괴상한 가스는 바실리스크만이 만들어낸다고 수근거렸다. 소문에 놀란 지역 참의원은 베네딕투스라는 의사를 불러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그는 과거 국왕의 어의로 일했으며 신비학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 조사관들이 긴 갈고리를 이용해 주검을 밖으로 빼내보니, 몸이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고, 눈은 달걀 마냥 툭 튀어나와 있었다. 이는 분명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부검 현장에서 이들이 바실리스크의 독에 당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공기와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는 옷을 입고, 유리로 된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채, 쇠스랑을 손에 쥐고 지하실로 내려가 바실리스크를 잡도록 건의했다.

 하지만 전국 방방고곡에서 지원자를 모집해도 군인, 경찰, 일반 시민을 통틀어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수감된 한 죄인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는데 바실리스크를 잡으면 무죄로 석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드디어 그가 지하실로 내려가기로 한 날, 현장에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응원했다.

 1시간 넘게 찾아 헤맨 끝에 그는 지하실 벽면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서 괴상한 동물을 발견했다.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졌고 마침내 그는 해를 향해 쇠스랑을 높이 들어 올렸다. 쇠스랑에는 아직도 몸을 비털어대는 괴물이 걸려 있었다. 수탉의 머리에 두꺼비의 눈을 하고 왕관같이 보이는 볏을 달고 있었으며, 구불구불한 꼬리에 온몸에는 사마귀와 비늘이 가득한데 독을 가진 동물 특유의 붉은색이 햇빛 아래에서 밝게 빛났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그 후로 이 바실리스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한다.

로마 시대에는 바실리스크가 그리스 신화의 괴물 메두사의 피가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져서 태어난 것으로 믿었다. 그러다가 로마시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자, 바실리스크 탄생 이야기는 더욱 기괴해졌다. 즉 바실리스크는 뱀의 알을 수탉이 품고 있다가 부화한 탓에 수탉과 뱀의 모습을 모두 가졌다는 것이다.

 바실리스크가 메두사의 피에서 태어났다는 로마 시대의 설정은 중세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여기에 두 눈으로 사람을 보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힘까지 있다는 전승이 더해졌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가 두 눈으로 사람을 보기만 해도 사람이 돌로 변해 죽고 만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흔적이다.

 1476년 영국 작가 제프리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바실리스크는 수탉 울음소리를 듣거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면 죽는다고 적었다. 이는 바실리스크의 특성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꼰 것이다. 수탉에 의해 태어났으니 수탉의 울음소리에 약하고, 뭐든지 두 눈으로 보기만 하면 죽으니 그 자신을 바라보면 죽지 않겠느냐는 조롱이 담긴 묘사였다. 실제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한 남자가 거울을 들고 와서 바실리스크의 얼굴을 비추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바실리스크가 죽고 말았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중세 유럽에서는 바실리스크의 피와 사람의 피에 식초를 섞고 구리를 집어넣으면 구리가 황금으로 바뀐다는 주장도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천재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플리니우스의 견해를 재인용한 자리에 "족제비의 오줌이 바실리스크를 죽일 수 있다:" 라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바실리스크 존재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이집트 사막에 사는 독사인 코브라의 특성이 유럽에 잘못 전해져서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코르바른 똑바로 몸을 세워서 움직일 수 있으며, 킹코브라의 머리에는 왕관처럼 생긴 돌기가 솟아있다. 또 코브라 중 일부는 독을 침처럼 멀리까지 뱉을 수 있으며, 대가리에 눈동차처럼 생긴 하얀 반점이 그려져 있다. 코브라의 천적은 몽구스인데, 몽구스는 족제비과 동물이다. 이러한 점들은 사람들이 묘사하는 바실리스크이 특성들과 일치한다.

 중세 유럽에서 비실리스크는 사악한 괴물로 여겨졌으나,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런 특성에 주목하여 바실리스크를 내세워 재앙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래서 스위스 도시 바젤에서는 바실리스크를 도시 상징으로 삼았다. 

 바실리스크와 매우 비슷하여 구분하기 힘든 괴물로 코카트리스(Cockatrice)가 있다. 코카트리스도 바실리스크처럼 뱀의 알을 수탉이나 두꺼비가 품어서 부화한 괴물로, 수탉의 대가리와 두 다리에 뱀의 몸과 꼬리를 한 기괴한 형태를 지녔다. 코카트리스는 바실리스크처럼 두 눈에 독을 품고 있어서 사람이나 동물을 보기만 해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코카트리스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죽었고, 코카트리스의 사악한 눈길에 유일하게 면역을 지닌 동물은 족제비로 여겨졌다. 결정적으로 코카트리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두 눈의 독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이런 코카트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답은 이집트 나일 악어다. 유럽인들이 이 동물을 잘못 보고 멋대로 상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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