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
늑대인간의 특징을 지닌 전설 속 생물은 옛날부터 존재했으며, 다른 문명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워울프(werewollf, 베오 울프) 즉 늑대인간이라는 명칭과 늑대인간 전설이 정식으로 출현한 것은 15세기 유럽이었다. 그리고 16-17세기를 거쳐 지금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늑대인간의 변신에 관해서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스키타이 북동쪽에 사는 네우로이 부족은 매년 며칠 동안 늑대로 변신하는데 이후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도 인간이 늑대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 작가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고대 아르카디아의 왕 리카온이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제우스한테 제물로 바치자 분노한 제우스가 리카온에게 저주를 내려 그를 늑대로 변하게 했고 하늘로 올려 이리자리가 되게 한다. 이를 늑대인간 전설의 기원으로 보고 그 변신 능력을 라이칸스로피(Lycanthropy)라고 부르는데 리카온(Lycaon)에서 비롯한 말이다.
또한 로마 학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는 아르카디아의 호수를 건너 늑대로 변신한 남자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남자는 9년 동안 어떤 사람도 공격하지 않으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나 참지 못하고 그만 어린이를 죽이고 창자를 먹는 바람에 10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사람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로마의 작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소설 '사티리콘'에도 늑대인간 이야기가 언급된다. 소설 등장인물인 니케로스는 "친구를 찾았는데 길가에 옷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버린 후 늑대로 변하고는 울부짖으며 숲으로 도망갔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늑대인간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존재하긴 했지만 15세기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늑대인간 전설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시기의 전설은 게르만 원시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인간이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면 초인적인 능력을 얻는다고 전해졌다. 로마 시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자, 늑대인간은 유럽 각지를 침략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바이킹들에 의해 다시 각광을 받았다. 전쟁터에서의 용맹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바이킹들은 늑대를 딱히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늑대를 용감하게 싸우는 동물로 여기고 본받으려는 인식까지 있었다.
실제로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1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몸에 늑대 가죽이 덮였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이자 전쟁의 신인 오딘을 숭배하는 바이킹 전사들은 늑대가죽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래야 늑대의 영혼이 자신들의 몸속에 들어와 두려움을 모르고 용감하게 싸운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랄드 1세는 울프헤드나라는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은 광전사(Berserker: 바이킹 중에 곰 가죽을 걸쳐 입고 곰의 기운을 받아 싸우는 바이킹 전사들)와 비슷한데 곰 가죽 대신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다는 점이 달랐다. 이 전사들은 늑대 가죽을 걸치면 늑대의 능력을 얻게 되어 전쟁터에서 늑대처럼 잔인하고 포악하게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이야기는 중부 유럽과 서유럽으로 전해져 늑대인간 전설로 자리 잡았다. 이 전설은 슬라브 지역에도 전해졌는데 이런 괴물을 블코들락(vlko-dlak, 늑대가죽이라는 뜻) 이라 불렀다. 이후 이 단어는 '시체, 망령을 먹다' 를 뜻하는 부르달라크(verdalak)로 바뀌었고 이것이 현대 흡혈귀의 시초다. 이로써 지금의 늑대인간 전설과 흡혈귀 전설은 기원적으로 매우 가까움을 알 수 있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유럽에서 늑대인간 전설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마녀 사냥이 그 원인이었다. 마녀 사냥 과정에서 늑대인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었고 재판과 사형도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늑대인간이 나타났다는 소문으로 유럽 곳곳이 시끄러웠다. 자신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주장하는 사람도 생겼고, 늑대인간이 재판받는 각종 기록과 이를 반박하는 의학자들의 연구도 쌓여갔다. 의학자들은 늑대인간이 인간의 환상이나 망상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늑대인간에 대한 공포는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는데, 예외적으로 게르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면서 18세기까지 이어졌다.
동유럽에서 늑대인간의 전설이 널리 퍼졌는데 그중 하나가 11세기 벨로루스의 브세슬라프 왕자에 대한 전설로, 왕자가 낮에는 사람들을 재판하고 마을을 다스렸지만, 밤이 되면 늑대로 변신해서 벌판을 뛰어다닌다는 내용이다. 그러다가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15세기 말엽으로 접어들자, 늑대인간의 이미지는 좋은 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나쁜 부분만 남아 그야말로 악마가 되어버렸다. 지금 사람들이 늑대인간에 관해 떠올리는 이미지, 즉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신하여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 먹거나 죽인다. 오직 은으로 만든 총탄으로 쏴야 늑대인간을 죽일 수 있다. 늑대인간한테 물리는 사람은 늑대인간이 된다라는 식의 인식은 대부분 이때 생긴 것들이다.
1589년 자신을 늑대인간의라고 믿은 독일의 농민 페터 슈툼프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 살점을 먹어치워 연쇄 살인과 식인 혐의로 처형당했다. 또한 16세기 프랑스에서는 늑대인간들이 사람들을 습격했다는 보고가 수없이 올라와서 법원에서 재판으로 다르기도 했다. 1598년 프랑스 앙주에서는 늑대인간이 발견되었고, 1603년에는 10대 소년이 자신을 늑대인간이라고 주장하여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1764-1767년 사이 프랑스 남부의 로제르에서는 이른바 '제보당의 괴수' 사건이 발생하여 80명의 남자가 죽임을 당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사건은 변형된 늑대인간의 인간 습격 사례였다.
독일에서는 1650년 이후에도 늑대인간들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지역에서는 18세기까지도 늑대인간의 존재에 관해서 사람들이 매우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
슬라브족의 터전인 동유럽에서는 늑대인간을 마법사나 흡혈귀와 같은 족속이라고 여겼다. 동유럽 민담에서는 살아 있을 때 늑대로 변신한 마법사는 죽어서 흡혈귀가 되며, 흡혈귀도 특정 기간이 되면 늑대로 변신한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다.
문화권마다 전해지는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늑대인간이 인간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늑대인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미궁(眉弓)이 툭 튀어나와 있으며, 손톱이 구부러져 있고, 귀가 보통 사람보다 아래쪽에 달린데다 걷는 모습 역시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 또한 피부를 갈라보면 그 안에 늑대털이 자라있다. 혀 밑에도 뻣뻣하고 억센 털이 자라 있으며, 무덤을 파헤쳐 신선한 시체를 찾아내 먹는다.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면 일반 늑대와 큰 차이는 없지만 체구가 더 거대하며 꼬리가 없다. 여전히 인간의 눈을 하고 있으며 말소리 또한 인간과 같다. 또는 늑대로 변신했을 때 다리 세 개로만 달리고 나머지 다리 하나는 가로로 펴서 꼬리 역할을 한다는 설도 있다.
북유럽 전설에서 늑대인간은 노부인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손과 발톱에 독이 묻어있고 눈빛만으로 소나 어린아이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한다는 전설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독일에서 주로 출현했다.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늑대인간이 죽은 뒤 시체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늑대로 다시 태어나 전쟁터 주변을 맴돌며 죽은 병사의 피를 빨아먹는다. 이와 달리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에서는 죄인이 죽으면 피를 빠는 늑대로 변한다고 믿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목사는 삽으로 죄인 시체의 목을 잘라 악귀를 쫓아내고 그 목은 개울에 던져버렸다. 또한 헝가리에서는 어렸을 때 부모의 학대를 받거나 저주에 걸리면 늑대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늑대인간도 치료를 받으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못을 손바닥 중앙에 박아 넣거나, 칼로 그의 이마나 머리 정수리를 내리치면 되는데 모두 매우 위험한 방법이었다.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는 그이 세례명을 3번 반복해서 부르거나 한바탕 호되게 꾸짖는 것이었는데 효과는 미지수다. 늑대인간을 처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은으로 만든 총알로 죽이는 것이다. 신부가 축복을 내린 은으로 만든 총알이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대에는 의학적 관점에서 늑대인간 현상을 해석하고자 했는데, 먼저 포르피린증(피부가 빛에 민감해지고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혈액병)에 걸린 환자일 거라는 설이 등장했다. 하지만 포르피린증 환자는 늑대의 특징을 보이지는 않기에 다모증에 걸린 사람일 거라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다모증 역시 매우 희귀한 병으로 역사상 대규모로 출현했다는 늑대인간 기록과는 맞지 않는다.
또한 늑대인간이 광견병에서 유래했으리라는 주장이 있는데 늑대나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늑대인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6~17세기 유럽에서 광견병이 대유행했다. 평소 멀쩡하던 사람이 미친개에게 물리면 눈동자가 커지면서 햇빛을 싫어하고 침을 흘리며 흉악해지는 병이 광견병이고 이를 보고 사람들이 늑대인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광견병이 늑대인간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괴물 전설은 고대 그리스까지 소급하는 늑대인간이며 흡혈귀 전설도 늑대인간으로 부터 나왔으니 늑대인간이야말로 명실상부 유럽 최고最古 전설의 괴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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