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티오켄타우로스
그리스 신화에서 이크티오켄타우로스는 인어와 켄타우로스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전설의 생물로 등장한다. 예술 작품에서는 인간의 상반신에 말의 앞다리와 물고기 꼬리를 가졌고, 머리에는 바닷가재나 게의 집게발이 달린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크티오켄타우로스Ichthyocentaurus라는 이름은 이크티오와 켄타우르스가 합쳐진 말이다. 이크티오는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켄타우로스는 말과 인간의 합성이다.
이크티오켄타우로스가 페니키아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페니키아 신화에서 아스타르테Astarte는 탄생한 후 다곤(Dagon:풍작의 신으로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숭배했음)과 비슷하게 생긴 성스러운 물고기에 의해 땅 위로 올려진다. 아스타르테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금성의 여신인 이슈타르와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기원이 같다.
그리스인이 왜 인어와 켄타우로스 형상을 합쳤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이크티오켄타우로스는 아프로스Aphros와 비토스Bythos형제이며, 아프로스는 바다거품을, 비토스는 바다의 깊이를 의미한다. 이들의 아버지는 크로노스Kronos고 어머니는 필리라Philyra, 가장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Cherion과는 형제지간이다. 과거 콤마게네 왕국의 제우그마에서 발견된 작품에서는 아프로디테의 탄생 장면에서 이들 형제가 여산의 조개껍데기를 바다 위로 들어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형제 가운데 아프로스를 아프로디테의 양아버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형제는 항상 함께 등장하는데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메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리쿠르구스왕이 트라케를 통치하고 있을 무렵 아직 아이였던 디오니소스는 숲의 요정(님프)들 손에서 길러졌다. 어느날 산에서 사냥하던 리쿠르구스왕은 이들과 우연히 마주치고 화살을 조준해 쏘기 시작한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디오니소스는 바다로 뛰어드는데 이때 아프로스와 비토스의 보호를 받는다.
또는 아프로스와 비토스 형제를 별자리와 연관 지어 물고기자리를 구성하는 한 무리의 항성으로 보기도 한다.
히드라
히드라(Hydra)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신화다. 히드라 퇴치는 헤라클레스의 열두가지 과업 중 두 번째였다. 헤라클레스에게 죽임당한 뒤 히드라는 하늘로 올라가 물뱀자리가 된다.
흔히 히드라는 대가리가 9개 달린 뱀으로 묘사되는데, 신화마다 머리 개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초기 형상은 머리가 6개였는데, 고대 그리스 시인 알카이오스는 머리를 9개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한 세기 후 고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는 자신의 작품에서 히드라 대가리수를 50개까지 늘려 놓는다.
히드라의 대가리 9개에서 8개는 베어 없앨 수 있지만 나머지 1개는 불사의 머리다. BC 1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히드라를 몸 하나에 100개의 목이 달린 뱀으로 형상화했는데, 목에는 각기 뱀 대가리가 하나씩 붙어 있다. 반면 BC 2세기 그리스으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히드라는 보통의 물뱀보다 몸집이 다소 크고 치명적인 맹독을 지닌 물뱀으로 대가리는 한 개 뿐이라고 한다. 과거 음유시인들이 듣는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여 노래가 인기를 끌게 하려고 히드라 대가리수를 과장해서 늘렸다는 것이다.
또한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묘사한 히드라는 100개의 머리가 있고 하나가 잘리면 그곳에서 두 개의 대가리가 새로 생겨난다. 이에 비해 플라톤이나 에우리피데스, 베르길리우스 등은 히드라 대가리 숫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매우 많다고만 기록했다. 헤라클레스와 히드라의 싸움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흑생상 도기의 단골 소재였는데 역시나 대가리수가 일정하지 않다. 7개, 9개, 13개 등 그 개수가 각기 다른데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오비디우스가 언급한 것처럼 히드라는 놀라운 재생 능력을 갖고 있어서 대가리가 잘리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대가리가 생기는데, 히드라의 이런 능력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에우리피데스다. 히드라 대가리를 잘라내면 새로 두 개가 자란다고 했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팔라에파토스, 오비디우스 등도 비슷하게 이야기했는데 세르비우스만 히드라의 대가리 하나가 잘리면 그곳에서 3 개가 새로 솟아난다고 했다.
히드라를 물리치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사용한 방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화살을 쏘아 죽였다거나, 벌겋게 달아오는 인두로 지졌다거나, 활활 타는 횃불로 물리쳤다고 한다. 또는 히드라 주변 나무에 불을 질렀다고도 하고, 히드라 자신의 독을 묻힌 화살로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고도 전해진다. 히드라에게는 불사의 머리가 하나 있다고 알려졌는데, 헤라클레스가 마지막에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려 그 머리를 눌러버린다.
히드라의 출생 배경에 대해서는 헤시오도스의 견해가 일반적인데, 티폰과 에키드나의 후손으로 헤라가 길렀다. 아르골리스 해안가 근처 레르나 호수 혹은 늪지에서 서식하는데 보통 늪지에서 나와 양을 잡아먹거나 땅을 파괴한다. 히드라 별자리는 메소포타미아 별자리 중 뱀자리에 해당한다. 히드라같이 대가리가 여럿 달린 뱀 형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전쟁과 사냥의 신인 닌우르타가 원정길에 11 가지 괴물을 죽이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머리 7 개 달린 뱀이었다.
고르곤
고르곤(Gorgon/복수형으로는 Gorgones)은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유행하던 괴물 형상이다. 주로 물건이나 건축물에 장식물로 쓰여 공포나 압박, 위협을 상징했다. 고르곤이라는 이름은 두려움이란 뜻의 그리스어 고르고스에서 유래했다. 산스크리트어에도 비슷한 단어 garjana가 있는데 두 단어의 기원을 같게 보기도 한다. 두 단어 모두 마치 맹수가 울부짖는 소리와 같이 발음이 무척 특이한데 의성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르곤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그 모습은 기원전 6000년 전 세스클로 문화 유적지에서 이미 출현했다. 고르곤 형상과 그 문화인류학적 기능 등을 고려할 때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상 괴물 훔바바와 관련된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고르곤은 훔바바와는 확연히 다른 특정을 지닌다. 고르곤의 입술 밖으로 나온 긴 이빨은 멧돼재의 어금니와 상당히 닮았으며, 이빨을 드러낼 때면 입을 벌린 채 과장되게 웃는 모양이 된다.
가끔 혀를 내민 모습도 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훔바바와 이집트 베스, 인도 여신 칼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민 형상은 한때 다양한 문화권에서 비슷한 의미로 통했으리라 추측한다. 크게 뜬 고르곤의 눈은 아테나 여신과 문화적으로 관련성 있다. 고르곤의 눈과 아테나의 번쩍이는 눈은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하나의 기호로 사용되었으며 신성한 눈으로 불렸다. 이는 아테나의 신성한 새 부엉이 형상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들의 눈은 나선, 바퀴, 동심원, 卍, 태양 등으로 기호화되었다. 고르곤의 손과 발, 날개가 동일하게 시계 방향이나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향해 있는 것 역시 이와 관련있다.
초기 고르곤 형상에는 현재와 같은 뱀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충류 특징은 분명히 나타나는데 주로 머리 부분에서 드러난다. 대부분 끈으로 묶은 땋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정수리에는 머리카락이 돌돌 말려있다. 뱀의 머리카락을 휘감고 있거나 머리에서 뱀이 자라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러한 형상은 코르푸 섬의 아르테미스 신전 장식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그리스 초기의 용 혹은 뱀 숭배 사상과 관련된다. 고대에 신탁은 뱀의 보호를 받았으며, 고르곤 형상은 신전에 장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로 뱀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르곤의 몸이 비늘로 덮여 있다는 전설이 생겼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보면 아테나의 방패 중앙에 고르곤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고 나온다. 또 오디세이에서는 고르곤이 하데스 궁전에 등장하기도 한다. 에우리피데스에 따르면 고르곤은 타이탄족과 올림푸스 신들이 전쟁을 벌일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자기 아들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아테나는 고르곤을 죽여 그 가죽을 벗겨 자신의 몸에 걸쳤다.
맨 처음 고르곤 세 자매에 대해 기록한 사람은 헤시오도스다. 그는 신통기에서 고르곤을 힘을 뜻하는 스텐노(Sthenno)와 '멀리 나는'을 뜻하는 에우리알레(Euryale), '여왕'을 뜻하는 메두사(Medusa)로 나누었다. 세 자매는 포르키스와 게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최초 바다 신 폰토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혈통이다. 이들은 서쪽 바다 머나먼 곳에 산다고 알려졌다. 이와 달리 아이네이스(Aenis:로마 최고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에는 고르곤의 활동 무대가 지하 세계로 통하는 입구라고 나와 있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시인 키프로스는 스타시누스라는 시에서 고르곤 세 자매가 오케아노스에 있는 작은 바위 섬 사르페돈에 산다고 기록했다.
세 자매 중 오직 메두사만인 유일하게 죽는 존재며, 나머지 두 자매는 불사의 몸을 지니고 있다. 페르세우스가 헤르메스 신과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를 물리쳤다. 헤르메스는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낫을 주고, 아테나는 거울을 빌려준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였을 때 그 피에서 천마 페가수스와 거인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는데 다른 설에는 그 피가 바다 곳곳으로 흩뿌려지고 포세이돈의 몸에 닿으면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태어난다. 일부 전설에서는 페르세우스가 사이프러스로 돌아와 폴리텍스왕 앞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들어 올리자 궁궐 안의 모든 사람이 돌로 변한다. 또 페르세우스가 메두사 머리를 아르고스에 묻었다고도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치자 아테나가 자신의 방패 아이기스의 중앙에 붙인다. 그 방패 위의 메두사 머리 때문에 하늘을 받치고 있던 신 아틀라스가 아틀라스 산맥으로 변하면서, 그의 수염과 머리카락은 숲이 되고 어깨는 낭떠러지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메두사의 왼쪽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치명적이지만,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죽을 자를 살리는 힘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리스 시인이자 문법학자인 아폴로니우스는 메두사의 검은 피가 리비아 사막에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독사 둥지로 변했다고 기록했다. 이 독사는 사람의 피부에 상처를 내는 것만으로도 묵숨을 잃게 만들 수 있다. 독소는 점점 몸을 마비시키는데 눈앞이 검은 안개로 휩싸이다 점차 눈이 멀게 된다. 팔다리가 차츰 묵직해지면서 전혀 말을 안 듣는 상태에 이른다. 결국 그대로 몸을 바닥에 고꾸라지면 몸이 차가워지면서 독이 몸속 깊이 파고들어 몸을 부패시키고 머리카락을 빠지게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페르세우스가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리비아 사막 위를 지날 때 고르곤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사막에 떨어지면서 매끈한 피부를 지닌 뱀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이 뱀들의 후손이 아직도 리비아 사막에 살고 있다고 한다.
박물지 저자들의 견해는 이들과 조금 다른데, 파우사니아스는 고르곤 메두사의 신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아버지 포르키스가 죽은 뒤 메두사는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수 일대의 사람들을 다스렸다. 부족민을 이끌고 나가 사냥을 하거나 전쟁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날 페르세우스가 이끄는 부대와 맞서게 되었는데 그만 야밤에 암살을 당하고 만다. 죽은 메두사의 미모에 놀란 페르세우스는 그 머리를 베어 그리스로 가지고 돌아간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역시 고르곤 메두사의 신화를 이성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고르곤은 리비아에서 살았던 여성 전사 부족으로, 남성과 겨뤄도 전혀 뒤지지 않는 기량과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페르세우스는 이 부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데, 승리를 거두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디오도로스는 이들이 리비아 서쪽 지방에 살던 여성 부족으로 헤라클레스가 리비아를 거쳐 갈 때 그에게 쫓겨났다고 기록했다.
반면 폴리니우스는 고르곤을 미개한 여성 부족으로 보았으며 행동이 민첩하고 날쌔며 온몸이 털로 덮여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신화에서 고르곤은 인간을 돌로 변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이들이 암초를 만들어내는 바다의 수호신이었다는 점과 관련 있다. 암초는 선원들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다. 전설에 따르면 페르세우스는 포르키스와 케토를 물리친 뒤 모두 바닷속 암초로 만들어버렸다. 무적의 방패 이지스와 관련된 전설에서도 고르곤 신화의 원형은 암초와 관련된다. 이지스는 폭풍을 신격화한 것으로 선원들이 폭풍우 속에서 항해하다 보면 통제력을 상실하고 암추에 부딪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고르곤 전설은 가뭄과도 연관성 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잘랐을 때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생겼다. 풍요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샘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크리사오르는 곡식이 무르익은 후의 황금빛 잎을 묘사한다.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는 과거 크리사오로스(Khrysaoros)라고 불렸는데, 이 둘의 출현은 가뭄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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