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코르누스
카프리코르누스(Capricornus)는 라틴어로 뿔난 염소, 염소 뿔이나 염소와 비슷한 뿔이 난 생물을 의미한다. 가장 일반적인 모습은 황도 12개 별자리 가운데 염소자리 형태인데 상반신은 염소이며 하반신은 물고기다. 12개 중 가장 괴이한 모습을 한 별자리로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염소와 물고기의 조합이다.
이런 형상은 수메르 문명 시기에 처음 출현했는데 지헤의 신 엔키(Enki)를 상징한다. Enki에서 En은 수메르에서 대제사장을 부르는 호칭이었다가 후대에 국왕으로 의미가 바뀌고, ki는 땅을 가리킨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땅의 왕'이 된다. 엔키는 인간에게 생존 기술과 문명 건설법칙을 전해주었으며, 물 밑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인 에리두Eridu가 솟아오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엔릴이 대홍수를 일으켜 최초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자 엔키는 인간 우트나피쉬팀을 구해준다. 이로써 엔키는 선한 신으로 인간의 숭배를 받는다.
엔키의 상징물은 본래 염소와 물고기인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염소와 물고기 형상이 합쳐진 염소물고기(MULSUUR. MAS, The Goat-Fish)가 탄생했다. 청동기 시대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에서는 이것이 동지(冬至)를 의미했다.
메소포타미아 천문학은 그리스 천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염소물고기 전설 역시 그리스로 전해졌는데 그리스인은 이를 자신들 이야기로 새롭게 창작해냈다. 많은 염소물고기 전설 중에 다음 두 가지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첫 번째 전설로 염소물고기는 본래 제우스에게 젖을 먹였던 아말테이아라는 이름의 염소였다고 한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해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린다. 이에 그의 아내 레아는 돌과 제우스를 바꿔치기 한 뒤 크레타 섬의 깊은 산속 동굴에 제우스를 숨긴다. 그리고 염소 아말테이아에게 젖을 먹여 제우스를 키우게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제우스가 장난을 치다가 아말테이아의 뿔 하나를 부러뜨리는데 이 뿔이 바로 신화에 등장하는 '풍요의 뿔'이다. 바로 여기서 카프리코르누스(Capricornus, 염소 뿔)라는 라틴어 이름이 유래했다. 또는 뿔 하나를 잃은 아말테이아가 전설 속 유니콘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두 번째 전설이 더 널리 알려졌는데, 어느 날 신들의 연회 자리에 갑자기 괴물 티폰이 나타나 마구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신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각기 동물로 변신해 도망치기 바빴다. 그중 산림의 신 판(pan)은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물고기 꼬리를 만들어 달고 도망쳤다. 본래 판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염소의 모습을 한 신이었다. 여기에 물고기 꼬리가 더해지자 반은 염소이고 나머지 반은 물고기인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그 영향으로 유럽의 염소자리 역시 염소와 염소물고기의 중간 형태를 보인다. 심지어 염소의 하반신이 염소 뿔 하나, 소라 껍데기, 구름으로 이루어지는 등 기괴하게 변형된 모습도 다양하게 출현한다. 그 외 중동 지역에서도 보통의 염소 외에 염소물고기 형태가 등장하는데, 여기에 새 발톱이나 새 날개 같은 새로운 부분이 추가되는 일도 종종 있다. 염소물고기 형상은 인도에도 전해져 인도 본토의 색깔을 입은 마카라(Makara)가 출현하는데, 마카라 역시 카프리코르누스로 볼 수 있다. 인도 신화에서 마카라는 물의 신이나 강의 신이 타고 다니는 괴물이다. 그 모습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고래나 악어, 인더스 강 돌고래 등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간혹 이 동물들의 특징이 뒤섞여 나타나거나 여기에 코끼리 코, 공작의 꼬리털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과거 카프리코르누스처럼 반은 염소, 반은 물고기인 형상이 인도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무굴 제국 시기에 상반신은 인도 영양, 하반신은 예술적으로 과장된 모습을 한 악어 그림이 출현한 바 있다.
이외에도 카프리코르누스 형상은 중국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어화룡魚化龍, 이문(螭吻: 용의 아홉 아들 중 하나) 등의 비슷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전설이 생겨난다. 또한, 티베트 지역에서도 추-스린(chu-srin)이라 부르는 코끼리 코를 가진 용이 건축물 추녀나 창무희극 가면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건너 일본으로 전해지면서는 호랑이 머리에 물고기 몸을 한 괴물에 관한 전설로 바뀐다.
히포캄포스
히포캄포스(Hippocampus)는 히포캠프(Hippocamp) 혹은 히포캄포이(Hippokampoi)라고도 부른다. 그리스어 '히포'hippo와 '캄포스'campus가 합쳐진 형태다. Hippo는 말을 의미하는 hippos가 변형된 것이며, campus는 바다괴물, 바다 생물을 가리킨다. 두 글자를 조합하면 '바다의 말'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히포캄포스는 상체는 말, 하체는 물고기 모습을 하고 있다. 간혹 가슴과 앞발굽이 물고기의 것인 변형된 형태도 있지만 머리와 목은 여전히 말 모습이다. 하체의 물고기 꼬리는 상당히 긴데 뱀처럼 둥그렇게 감겨 있다. 반면 바닷물고기의 얼룩무늬, 반점, 지느러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소아시아,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의 장식용 그림이나 물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히포캄포스의 기원은 소아시아 문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히포캄포스 형상이 최초로 등장한 곳 역시 소아시아 지역이었다. BC 4세기 고대 페니키아 티레 왕국이 발행한 동전에는 히포캄포스를 타고 있는 멜카르트Melqart의 모습이 등장한다. 멜카르트는 티레 왕국의 수호신이며 이 이름은 페니키아어에서 왕국의 왕을 의미했다. 멜카르트는 왕실의 선조로 여겨졌고 수메르 신화의 네르갈(Nergal)과 동일시되었다. 이후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와 혼동되기도 했으며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멜카르트를 숭배하기도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히포캄포스는 포세이돈을 비롯한 바다의 신들이 타고 있거나 신들의 마차를 끄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문학가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가Argonautica(아르고 원정대)에는 바다의 신이 히포캄포스가 끄는 마차를 모는 장면이 나온다. 이 호수는 님프의 소유였는데 이아손 일행이 바다로 향하는 수로를 발견하자 히포캄포스가 끄는 마차를 탄 암피틔테Amphitrite가 호수에서 솟구쳐 오른다.
고대 로마의 문학가 스타티우스는 저작 테바이스에서 히포캄포스에 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넵투누스Neptunus는 히포캄포스를 몰고 가서 에게해를 넘치게 한다. 히포캄포스들은 말발굽으로 해안가의 모래를 두드리며, 그들의 물고기 꼬리는 물속을 가득 채운다. 이 같은 묘사는 사실상 해일 같은 자연 재해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기 드문 비유는 아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인 동시에 말의 신이기도 하며, 서양에서는 밀려드는 파도를 달려오는 말 떼로 자주 묘사한다. 이외에도 스타티우스는 자신의 미완성 서사시 아킬레이스Achilleis에서 넵투누스가 히포캄포스의 마차에 탄 장면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잔잔한 해수면 위로 우뚝 솟은 바다의 신이 삼지창으로 히포캄포스 무리를 몰고 온다. 히포캄포스들은 앞발로 물보라와 물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질주하고, 뒤꼬리는 거칠게 요동친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이 같은 히포캄포스의 형상은 중세기에도 등장한다. 히포캄포스는 르네상스 시기 특정 단체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에 광범위하게 쓰였으며, 물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무사 출항을 기원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문장에 사용된 신화 속 히포캄포스는 해마seahorse라고 부르는 반면, 실제 생물인 해마는 문장학(가문의 문장과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히포캄포스'Hippocampus로 호칭한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스웨덴 신학자 마그누스는 베니스 군주와 주교에게 헌정하려고 제작한 해상지도인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에 히포캄포스 형상을 그려넣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히포캄포스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노르웨이의 중간 해역에 출몰한다. 머리는 말과 비슷하고 말 울음소리를 내며 소의 다리와 발을 하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덩치는 소만한데 물고기처럼 갈라진 꼬리가 달려있다. 땅과 바다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며 보통은 싱싱한 풀이나 해초를 먹는다.
페가수스
페가수스(Pegasus) 신화는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페가수스가 메두사의 목에서 탄생했다는 내용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신화 속에서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희롱당한 뒤 임신한다. 메두사는 목으로 임신한다고 알려졌는데, 페르세우스에게 잘린 메두사의 목에서 페가수스와 거인 크리사오르가 태어난다. 또는 목에서 흘러나온 피에서 탄생했다고도 한다. 다른 설로는 메두사의 피와 바다의 물거품이 합쳐지면서 둘이 생겨났다고도 전해진다.
사실 포세이돈의 내력에 관해 모른다면,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에서 파가수스가 태어났다는 신화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포세이돈은 대표적인 바다의 신인 동시에 지진의 신, 말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진과 화산 등의 자연재해가 거인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때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포세이돈의 자손 중에는 유독 거인이 많았다. 동시에 포세이돈은 말의 신으로 인류에게 최초로 말을 보내주었기에 자손이 페가수스가 될 수 있었다.
알고 보면 페가수스라는 이름 자체가 그 바다 혈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페가수스pegasus의 어원을 '샘' 이나 '우물'을 의미하는 페게이pege로 보았다. 오케아노스라는 샘구멍이 바로 페가수스의 탄생지다. 또는 그 이름이 고대 아나톨리아에서 루위족 신이었던 피하사씨Pihassassi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번개'를 의미한다. 이후 페가수스는 올림포스로 올라가 제우스에게 번개와 천둥을 운반해주면서 제우스의 말이 된다. 이외에도 페가수스를 에로스의 말로 보기도 하는데, 여러 별 사이를 질주하면서 하늘의 말로도 불린다.
페가수스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벨레로폰Bellerophon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인데 올림포스 신의 직계 혈통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는 달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지혜로우나 신들의 벌을 받은시지포스였다. 이런 이유로 제우스는 벨레로폰이 신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푸스로 오려 하자 등에를 보내 그를 저지한다ㅣ. 후에 이 등에는 제우스가 하늘로 올려 파리자리가 된다. 사실 처음에는 벨레로폰도 신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아테나는 벨레로폰이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치러 갈 때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알려주고 황금 말고삐를 건네주면서 그를 도왔다. 벨레로폰은 이 말고삐로 페가수스를 길들이는데 성공하면서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를 타고 무사회 키마이라를 죽여 없앤다.
페가수스는 온통 새하얀 말인데 헤시오도스는 날개가 달려 있지 않다고 보았다. 반면 고대 그리스 시인 판다로스나 고대 아테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 등은 분명 날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케아노스라는 샘구멍에서 탄생했다는 전설 때문인지 페가수스가 말굽으로 땅을 차서 샘이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다수 존재한다. 전해지는 바로는 페가수스는 태어나자마자 헬리콘 산꼭대기를 말굽으로 걷어찼고 그곳에서 히포크레네 샘이 솟아났다. 트로이젠, 페이레네 샘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히포크레네 샘은 시인들이 시적 영감을 얻는 곳으로 뮤즈의 샘으로도 알려졌다. 페가수스가 이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가 벨레로폰에게 잡혔다고도 하는데, 그런 이유로 후대에 뮤즈의 말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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