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에펠탑이 파리 만국박람회의 기념탑으로 건축된 1889년 당시에는 철골이 드러나 모습이 파리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말이 많았다.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을 보려면 에펠탑 위에서 보는 것이 제일 낫다'는 얘기도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볼 수 있다'는 비아냥의 소리였다. 파리 시민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에펠탑은 만국박람회 폐막 후 바로 헐릴 예정이었다.
에펠탑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군대 때문이었다. 군 통신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에펠탑은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던 셈이다. 지금은 파리 시민들도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황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은 당시 세계 정세가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이 이날 다른 옷을 입었더라면 전쟁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는 멋부리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 날도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의 예복을 입었다. 그가 상처를 입고 쓰러졌을 때 사람들이 그의 옷을 벗기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만큼 응급처치가 늦어져서 그는 사망하고 말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0월 혁명
러시아의 공산혁명인 10월 혁명은 정확히 1917년 11월 7일에 일어났다. 그럼 왜 10월 혁명이라고 할까?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은 율리우스력의 오차가 심해서 1582년부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개정한 그레고리력을 사용했다.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1917년 11월 7일은 10월 25일이다. 그래서 11월 혁명이어야 맞는 러시아 공산혁명은 10월 혁명이 되었다. 러시아는 혁명 이후인 1918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사용해 오고 있다.
노아의 방주
성격에는 인간의 악행을 징벌하기 위해 신이 물로 인간세상을 멸망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신의 뜻에 따라 살고 있던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동물 한 쌍을 태워 다가올 홍수에 대비하라는 천사의 계시를 받고 그대로 따랐으며, 나중에 아라라트 산에 방주를 상륙시켰다고 한다.
터키에 있는 아라라트 산은 노아의 홍수가 있고 난 뒤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생긴 이름이다. 유럽인들이 터키의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아라라트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터키에 있는 아라라트 산에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풍문은 계속 정설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소련의 비행사들이 아라라트 산의 상공에서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물체를 보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이 이야기는 사실처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아라라트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방주의 잔해로 알려진 나뭇조각의 연대측정 결과는 12세기 이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과학자들은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노아의 홍수를 믿는 수도자들이 아라라트 산에 들어가 노아의 방주를 재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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