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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항복의 백기/최초 사립탐정/러시아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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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을 뜻하는 백기

 전쟁에서 항복을 할 때 백기를 들어올린다. 국제적으로 백기가 항복의 표시라는 정식 규칙이 정해진 것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었던 만국평화회의에서였다. 우리나라 역사에 '헤이그 밀사사건'에 등장하는 바로 그 만국평화회의에서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끼리 전쟁을 하다보니 한눈에 항복으로 알 수 있는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한 규칙이다. 하지만 백기는 이미 그 이전에도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 이유에 관해서는 몇 개의 설이 있다.

 국기는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염색되지 않은 하얀 천을 들어올리는 것은 내 나라에 당신의 국기를 꽂아도 좋다. 이 백기에 물을 들여 당신의 국기를 만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중세 유럽에 교회가 주도하는 화이트 선데이라 불리는 날이 있었다. 이날만큼은 어떤 전쟁도 치룰 수 없었다. 전투가 진행되다가도 휴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세교회의 권위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이트가 휴전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제 3의 설로는 부상자가 나왔을 때 무기를 버렸다는 확실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하얀 포대를 흔들어 항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항복 의사를 표현하려면 흔히 찾을 수 있는 것을 흔들어야 한다. 하얀 천은 구하기도 쉽고 눈에 잘 띈다. 팬티라도 벗어서 흔들면 된다는 말이다. 만일 파랑색이나 노랑색의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면 그 색깔의 천을 찾는 사이에 항복할 겨를도 없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최초의 사랍탐정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립탐정이다. 실제로 역사상 사립탐정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1833년 프랑스의 코젠느프랑소와 비독이라는 남자가 세계 최초의 사립탐정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사립탐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비독은 원래 가짜 상표를 만들거나 스파이 노릇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뒷골목에서 몸으로 익힌 경험과 지식을 자본으로 탐정사무소를 열었다. 사무소 앞에는 '사적인 일에 관계하는 서비스정보취급사무소' 라는 간판을 붙이고 꽤 번창했는데 결국 정부의 압력으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비독의 재능은 그 후에도 크게 발휘되어 프랑스의 비밀경찰조직의 장으로 출세하기도 했다. 그는 범죄수사 기법으로 지문대조와 필적감정을 도입하는 등 그 특수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범죄수사나 경찰업무를 크게 발전시켰다.

 

러시아 정교

 러시아제국의 기초가 된 것은 9~12세기의 키에프 대공국이다. 키에프 대공인 블라디미르는 국가의 종교를 정하기 위해 각 종교의 자료를 수집했다. 당시 종교는 없어서는 안 될 국가의 상징이었다. 마지막까지 후보에 오른 것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였다. 대공은 처음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립에서 우세한 이슬람교를 선택하려고 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이슬람교에 대해 더욱 자세히 조사하면서 이슬람교의 가르침과 계율이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 메카를 향한 매일 5번의 예배도 번거롭기 그지없었지만, 가장 곤란한 것은 음주 금지였다. 러시아는 추운 나라다. 매서운 겨울을 넘기기 위해 술은 필수품이다. 술을 금하면 겨우 탄생한 국가가 반란으로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 사람들은 술을 좋아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교섭하면서 금주 조항만은 예외로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래서 러시아는 술에 관대한 그리스도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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