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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프랑스혁명/에티켓의 유래/마리 앙트와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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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과 화장실

 유럽은 역사적으로 뛰어난 에술과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매우 긴 야만의 시대를 보냈다.

로마시대에는 석조 건물로 지은 훌륭한 공중 화장실과 하수도 시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에 서유럽에서는 제대로 된 화장실을 만들 수가 없었다. 공중 화장실도 요강 같은 것을 설치한 정도였는데 배설물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만들 수가 없었다. 공중 화장실의 수가 극히 적다 보니 거리는 오물로 넘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심하게 날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요강 같은 것에 일을 보고 아침이 되면 창문을 통해 도로에 버렸다. 집안에 하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악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루브르 궁전

 당시 루이 14세가 살고 있던 루브르 궁전도 오물과 온갖 오염으로 악취가 매우 심했다. 그것을 참을 수 없게 된 왕이 베르사유에 궁전을 새로 짓고 옮기게 되었다. 그 결과, 국왕과 시민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결국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유럽 도시에서는 콜레라를 비롯한 전염병들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유럽의 화장실과 변기 개발이 진행되었다.

 

프랑스혁명과 날씨

 당시 프랑스 국민의 90%가 넘는 농민과 평민은 과도한 세금을 물고 총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귀족과 성직자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1788년 프랑스 곳곳에는 우박이 수차례 쏟아져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유박으로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다음 해인 1789년 7월 10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혁명에 불이 붙었다.

 만약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농민들은 조금 더 궁핍한 생활을 견뎌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박이 내렸다고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극심한 농작물 피해가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에티켓의 유래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루이왕조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그의 외관과 내장은 한마디로 휘황찬란하지만, 이 건물에는 잘 알려진 대로 화장실이 없다. 그 이유는 당시의 왕을 비롯한 궁전의 사람들은 각자 전용 변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264개의 변기를 가지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하지만 전용 변기가 없는 손님은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궁전의 정원에서 사람 눈을 피해 용변을 보는 일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정원에서는 늘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런 매너 없는 행동에 화가 난 정원사 중 한 사람이 하루는 출입금지 팻말을 세웠다. 이 팻말이 '에티켓'으로, 이것이 예절을 의미하는 에티켓이란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마리 앙트와네트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황제 루이 16세와 그의 황후인 마리 앙트와네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될 운명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신경이 곤두서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마리 앙트와네트가 하룻밤 만에 백발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공포나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백발이 될 수는 있지만, 새로 나오는 두피 부분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미 다 자라버린 머리카락의 색은 변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1개월에 약 1㎝ 정도 자란다. 그러므로 몇 달은 지나야 백발이 된 머리를 확인할 수 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머리가 설사 백발이 되었다고 해도 이미 자라있는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되지 않기 때문에 하룻밤 만에 머리 전체가 하얗게 세었다는 말은 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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