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 전설 귀신 요괴 괴물

판도라의 상자와 최초의 인간

728x90
반응형

판도라의 상자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두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최초의 인간에 대한 것이며, 또 하나는 삶의 의지에 대한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문화권에도 그들 나름의 천지창조 설화, 창세 신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게 열렸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최초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들 민족이나 문화권의 사유와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만들어,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신화나 전설을 창세신화로 분류한다.  특히 최초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특정 민족이나 문화권이 형성되기 전이었는데도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이룩했던 바빌로니아 창세신화에서는 신들이 자신들이 하기 힘든 노역을 떠맡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정하고 신 한 명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그의 피와 살을 점토에 섞어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집트 창세신화에서는 이집트인들의 젖줄인 나일강의 신, 크눔(Khnum)이 진흘과 짚을 섞어 물레를 돌려 아주 정교하게 인간을 만들어낸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최초인간 아담을 흙으로 빚고 코에 숨결을 불어넣어 최초 인간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아담이 외로워하자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 갈비뼈 하나를 떼어 하와를 탄생시켰다.

 아담은 남자라기보다 히브리어로 인간 전체를 뜻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서에서도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고 한다. 또한 아다마(Adamah: 흙, 땅, 지구)에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고 아담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인간의 근본은 흙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국 신화와 전설에서 최초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은 것은 창조 여신 여와가 최초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여와는 황토로 최초 인간을 빚었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황토더미를 끈으로 휘둘렀더니 황토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많은 인간이 태어났다고 한다. 역시 흙으로 최초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몽골 신화에서도 천상의 신 '울겐'이 땅으로 내려와 최초의 인간과 동물을 진흙으로 만들어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최고 신 제우스가 불과 대장간의 신 페파이토스에게 흙으로 여자를 빚게 해서 생명을 불어넣어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이처럼 종족과 민족과 문화권은 달라도 동서양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초의 인간은 흙으로 빚어 탄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왜 하필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을까? 인류는 1만여 년 전 이동생활을 끝내고 혁명적인 농경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정착생활을 하면서 땅의 소중함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땅은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생산의 원천으로 자녀를 생산하는 어머니와 같은 개념으로 묶인다. 따라서 최초 인간도 흙의 산물로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은 하늘이 아니라 흙 위에서 살아가며 죽어서도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 고대인들에게 흙처럼 소중하고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없었다. 흙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요 끝으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족 영웅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춰놓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다. 그때문에 몹시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영원히 고통을 겪어야 할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불을 얻음으로써 큰 축복을 누리게 된 인간에게도 보복하려고 한다. 그래서 흙으로 인류 최초 여성인 판도라를 탄생시켜 지상으로 내려보내려 한다. 그러자 모든 신들이 그녀에게 선물을 준다. 아프로디테는 미모, 교태, 욕망 등을 선물하고, 아테나는 옷과 함께 옷감 짜는 기술을 선물한다. 헤르메스는 재치, 교활함, 말솜씨, 호기심 등을 선물한다.

제우스도 상자 한 개를 선물하면서 절대로 열어보면 안된다고 당부한 뒤, 지상의 에피메테우스에게 내려보낸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다. 형 프로메테우스는 그 이름이 '앞서 생각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며,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뒤늦게 꺠달은 사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뜻한다. 이들 형제는 지상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재능과 능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지혜가 부족한 동생이 마구 나눠주다보니 가장 늦게 만들어진 인간에게 부여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하소연 하자 형이 제우스가 감춰놓은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불은 인간에게 더할 수 없이 큰 축복으로,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보낸 선물 상자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한다. 그러자 예지력과 지혜가 뛰어난 형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그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경고를 무시하고 판도라와 당장 결혼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선물한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점점 호기심이 커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질병, 가난, 전쟁, 증오, 시기, 질투 등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게 놀란 판도라가 당황한 나머지 상자 뚜껑을 닫았는데 남은 것은 오직 '희망' 뿐이었다고 한다. 제우스가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된 인간에게 판도라가 상자를 열게 해 복수한 것이다.

이것이 판도라의 상자의 본래 이야기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인간의 모든 불행과 죄악과 고통이 들어 있었으며 제우스가 의도적으로 맨 밑바닥에 '희망'을 넣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때문에 인간들이 힘들게 살아가며 온갖 수난과 시련과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불행을 견디고 극복하면 마침내 보다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아직 실행되지 않은 어떤 상황이 마침내 실현되면 크게 기대할 만한 희망이 있다는 긍정적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을 말하는 부정적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의 삶이 결코 순조롭고 순탄하고 축복과 행복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고통스런 삶과 불행을 숙명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삶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가 주는 메시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