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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1차 세계대전 승리자는 인스턴트 커피?/ 전쟁의 빚더미에 앉혀진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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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승리자는 인스턴트 커피?

미국인들은 일찌감치 커피 맛에 매혹되었다. 1860~1865년 벌어진 남북전쟁 중에도 군인들까지 커피를 매일같이 마셨을 정도다. 남북전쟁은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와 존속을 주장하는 남부 사이에 일어난 내전으로, 북군은 중남미와 유럽을 통해 들여온 품질 좋은 원두 공급이 원활했고 이에 비해 남군은 해안을 봉쇄당해 원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때론 남군 측에서 휴전을 요청한 다음, 가지고 있는 물자를 커피로 교환해달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는 커피를 마시려면 원두를 로스팅해 분쇄해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려야 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매번 이런 방법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무척 번거로웠다. 그래서 북군은 커피를 만들어 연유를 섞어 진하게 농축시켰다가 마시고 싶을 때 물을 부어 끓여 먹었다. 이것이 바로 인스턴트 커피믹스의 시초다.

 남북전쟁은 남부가 1865년에 항복함으로써  미국 합중국의 통일이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는데, 이후 본격적으로 인스턴트 커피 개발이 이뤄졌다. 그중 조지 워싱턴이라는 사람이 커피 분말을 만들어 특허를 받고 1910년 본인 이름과 같은 '조지 워싱턴 커피' 를 창업했다. 사업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조지 워싱턴 커피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엄청나게 대박이 났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이 커피 맛에 익숙해진 군인들 덕분에 인스턴트 커피는 날개돋친 듯 팔렸다. 

 

1차 세계대전으로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앉은 독일

 전쟁의 여려 폐해 중 하나는 바로 금전적 손해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패전 배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미 전체 인구의 10%, 영토의 13.5%를 잃은 데다가 영국과 프랑스에 1320억 마르크(약 30조 원)를 배상해야 했던 독일은 돈을 마구 찍어냈다. 당시 독일 정부의 1년 세입이 60~70억 마르크였기 때문에 별수가 없었다.

독일군을 찌르는 배상금 풍자만화

 그런데 무분별한 화폐 발행은 독일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923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222억%라는 이른바 초인플레이션으로 독일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게다가 화폐 가치 폭락으로 배상금 중 10억 마르크밖에 갚을 수 없었고 이후 오랫동안 차차 갚아나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2010년에서야 비로소 이 채무를 결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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