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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죽어서도 세금을 내야 했던 사람들/마르게리타 피자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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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죽어서도 세금을 내야 했다고?

유럽 중세 시대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거두는 악랄한 세금이 많았다. 그 가운데 사망세는 특히 백성을 대대로 괴롭혔다. 당시 유럽은 봉건사회로 왕과 귀족, 영주와 같은 지배층이 있었고, 이외에 지배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기사, 지배층의 영토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노가 있었다.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농노는 영주의 보호를 받는 대신 영주에게 부역이나 노역을 바치면서 생활했다. 원칙적으로 농노는 충분한 자금을 모으면 영주에게 자유민의 신분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일단 농노가 그만한 재산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또한 농노의 재산은 원칙적으로 아들에게 상속될 수 있었으나 영주는 농노가 사망하면 그 유족에게 '사망세'를 징수해 농노가 재산을 넉넉히 소유하거나 그 재산으로 신분을 벗어나는 것을 차단했다. 사망세는 농노 재산의 33~50%를 차지할 만큼 거액이었다. 게다가 돈이 없으면, 죽은 농노가 소유했던 동물을 대신 가져갔다. 결국 유족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영주에게 의지하는 농노의 삶을 이어나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화되어 농노가 해방되면서 사망세는 유럽 각국에서 점차 폐지되었는데,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1789 ~1794)때 최종적으로 없어졌다.

 

마르게리타 피자 유래

 18세기 항구 도시 나폴리에는 수많은 빈민이 살았다. 그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길거리 노점에서 주로 사 먹었던 게 바로 값싼 피자다. 당시 피자는 요즘의 피자와 매우 달랐다. 얇은 도우(납작한 빵)에 마늘과 소금, 돼지기름 조각을 올린 간단한 먹을거리였다. 전부 하얀색이라 '피자 비앙카(화이트 피자)'라고 불렸다. 그래도 쫄깃한 식감이 있어 그 맛에 사람들이 먹었다고 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여러 도시 국가와 주변의 식민지로 쪼개져 있었는데, 사부아 왕가가 다스리던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통일된다. 그 뒤 1889년 통일 2대 황제 움베르토 1세가 부인인 마르게리타 왕비와 나폴리를 방문했다. 그때 이들은 이탈리아 음식을 맛보고 싶어했고 당대의 유명 요리사가 황제 부부의 나폴리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마르게리타 왕비의 이름을 붙인 피자를 개발했다. 바질과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토마토 소스를 활용해 녹색, 흰색, 빨간색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들어 대접했고, 이 피자는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마르게리타 피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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