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수도원이 염전에 양식장까지 있었다고?
중세 유럽의 수도원 풍경은 경건한 요즘의 수도원과 사뭇 달랐다. 염전이나 양식장까지 갖춘 시설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는 수도사들이 염장 생선을 주로 먹고 살았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1000년경 게르만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바이킹족이 세운 러시아도 그리스도교의 교세 안에 편입되었다. 이렇게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자 로마 교황청의 위세는 대단했다. 당시 교황청이 교인들에게 엄격한 금육(禁肉)과 금식을 요구하면서 유럽인들의 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금육 규제는 그리스도교의 교세 확장과 더불어 점차 엄격해져서 1년의 3분의 1은 육식을 못하게 되었고, 중세 후반에는 무려 215일이나 육식을 금해야 했다. 다만 생선은 예외로 허용되어서 상대적으로 생선 소비가 급증했다.
그런데 그때는 냉동 시설이 없었다. 생선을 저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염장'이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염장 생선을 주로 먹었다. 특히 많은 수도자가 같이 사는 수도원은 금육 규제를 더욱 철저히 지켜야 했으므로, 아예 양식장과 염전을 운영하거나 소유해 식생활을 해결했다.
프랑스 혁명이 카망베르 치즈를 퍼뜨렸다고?
중세 유럽의 엄격한 육류 섭취 규제는 치즈를 발전시켰다. 육류에서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했기에 대신할 식품으로 사람들이 치즈를 적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음식 섭취에 제재를 많이 받았던 수도사가 치즈를 열심히 개발했다. 그중 하나가 카망베르 치즈였다.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 때 카톨릭 사제들은 새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서약해야 했다. 이를 거부하면 처형당하거나 추방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제가 시골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1790년 샤를 장 봉부스트라는 한 사제가 작은 농장에 신세를 졌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카망베르 치즈 제조법을 전수해주었다. 이 비법을 전수받은 마리 아델은 후손에게도 비법을 알려주었고 마리 아델의 집안을 통해 카망베르 치즈가 점차 유명해졌다. 1863년 나폴레옹 3세에게까지 진상된 카망베르 치즈는 이후 치즈 포장법 등이 발전하자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샴페인이 수도사 이름이었다고?
프랑스 최고급 샴페인의 대명사 돔 페리뇽(Dom Perignon). 프랑스 푀북단의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인 샴페인 중에서도 최고의 제품을 일컫는다. 그런데 돔 페리뇽은 원래 사람의 이름이었다. 여기서 돔(dom)은 당시에 수도사에게 존경의 의미로 붙이는 말이고, 페리뇽이 수도사 이름이다.
17세기만 해도 샹파뉴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와인이 생산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프랑스의 다른 와인 생산지보다 조금 추운 기후여서 봄마다 와인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때론 탄산가스가 심하게 나와 병을 꺠뜨리기까지 하자 이를 해결하는 임무를 맡아 파견된 사람이 바로 페리뇽이라는 수도사였다.
페리뇽 수도사는 연구 끝에 샹파뉴에서 생산된 와인에 맞춰 탄산가스의 압력을 견디는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탄산가스가 많은 스파클링 와인의 특성을 잘 살려 품질 좋은 샴페인을 생산하는 데 공헌했다. 그러자 샹파뉴 지역의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로 이 고급 샴페인에 수도사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자투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어서도 세금을 내야 했던 사람들/마르게리타 피자 유래 (0) | 2021.07.13 |
---|---|
차(茶) 때문에 명품 브랜드가 생겼다고? (0) | 2021.07.13 |
'모카'는 예멘의 지명/중동의 남편 조건/17세기 이전 유럽인은 술고래 (1) | 2021.06.22 |
조선시대에 버터?/화장실 흙 채취?/콜럼버스가 발견했는데 아메리카? (0) | 2021.06.22 |
세계 최초 지폐/징기스칸의 육포/조선건국과 하조대 (0) | 202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