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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 귀신 요괴 괴물

고대 근동 신화 - 훔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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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바바(Humbaba)는 수메르어로 후와와(huwawa)라고 하는데, 아시리아에서 부르던 호칭을 가져온 것이다. 훔바바라는 이름에는 항상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훔바바는 거인괴물로 사자의 발을 하고 있으며 몸은 온통 가시 비늘로 덮여 있다. 

 독수리 발톱에 머리는 들소의 뿔이 돋아 있고, 꼬리와 생식기에는 뱀의 대가리가 달려 있다. 또는 사자 얼굴을 하고 있으며, 죽음의 눈길로 사람을 주시하는데,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홍수가 용솟음치는 듯하고 입으로는 죽음을 뿜어대며, 숨결은 뜨거운 불과 같고, 숲속 백 리 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각상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훔바바의 얼굴이다. 겹겹이 찹혀있는 주름은 미로 같기도 하고 사람이나 동물의 창자 같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훔바바와 파주주(Pazuzu)는 모두 한비(Hanbi)의 아들로 옛날부터 존재했던 거대한 괴물이다. 태양신 우투(Utu)가 훔바바를 키웠으며 신들이 사는 삼나무 숲을 지키게 했다. 엔릴은 인간이 훔바바에게 공포를 느끼게끔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훔바바에 관한 전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길가메시의 기록이다. 서로 싸우다가 친해진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함께 신들이 사는 삼나무 숲으로 향한다. 숲에 사는 훔바바를 죽여 큰 명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둘 다 엄청나게 강한 영웅이었지만 괴물 훔바바를 상대하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먼저 길가메시는 훔바바에게 일곱명의 누나와 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한다. 그 대신 엔릴이 훔바바에게 준 광채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말한다. 둘은 훔바바가 잠시 경계심을 푼 틈을 타서 그를 기습적으로 제압한다. 

 다른 판본에서는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힘을 합쳐 훔바바를 붙잡은 뒤, 길가메시가 훔바바의 머리를 베어 가죽 자루에 담아 엔릴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혹은 군대를 거느린 길가메시가 신에게 일곱 가지 제물을 바친 후 일곱 가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훔바바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혹은 훔바바와 싸우는 과정에서 큰 두려움에 휩싸인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태양의 신 샤마시(Shamash)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태샹신의 도움으로 훔바바를 쓰러뜨렸다고도 한다. 샤마시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으로 수메르 신화의 우투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 같은 붐바바 신화에는 익숙한 요소가 눈에 많이 띈다. 훔바바의 죽음의 눈빛과 날름거리는 혀 그리고 반신반인 영웅에게 머리가 잘린 뒤 가죽 자루에 담기는 증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메두사 신화는 고르곤 신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기서 고르곤은 '두려운 것'을 의미하며 이 역시 훔바바와 연관된다. 고르곤의 무시무시한 형상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데 쓰였으며, 입 밖으로 내민 혀는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위협을 의미했다. 이러한 점은 훔바바의 조각상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훔바바 역시 얼굴이나 머리만 있는 조각상이 많은데 이로써 훔바바와 고르곤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 문헌에서 훔바바는 난폭하고 어리석은 괴물로 묘사된다. 반면 새롭게 발견된 고대 바빌로니아 진흙판에는 훔바바의 모습이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삼나무 숲속 가득히 원숭이와 매미의 울음소리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매일 삼나무 숲에서 연주되는 이 교향곡은 그들의 왕 훔바바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훔바바는 상당히 문명화된 통치자로 형상화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훔바바를 우르크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훔바바는 레바논과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던 나라로 삼나무가 많이 자라다 보니 매우 부유했다. 엔키두도 하나의 나라였는데 싸움에 상당히 능한 부족이었지만 길가메시에게 정복당했다. 우르크보다 낙후되다 보니 결국 길가메시에게 투항한 것이다. 길가메시는 늘 훔바바의 풍부한 자원을 탐냈고 마침 삼나무는 우르크에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결국 엔키두 부족의 힘까지 등에 업은 길가메시는 전쟁을 일으켜 훔바바를 멸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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