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의 문제점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달 통계청이 월별 신생아 수를 발표할 때마다 언론에선 신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라며 걱정스러운 기사들을 쏟아낸다. 2016년 4월부터 월별 신생아 수는 다른 해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 32개월째 역대 최소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 말은 2018년 11월에 태어난 신생아 수가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집계된 역대 11월 신생아 수 중에서 가장 적다는 말이다. 2018년 한국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OECD 회원국들 중에서 가장 낮은 기록이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어떻게든 출산율을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사회 제1차 기본계획이 추진된 2006년 이후 2018년까지 13년 동안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투입한 예산만 14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저출산 대책이란 이름표가 붙지 않은 다른 관련 사업 예산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예산을 썼을 거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에 비해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저출산 대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5년 당시 1.07명이던 합계출산률은 2018년 0.98명을 기록해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건 애초에 타겟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혼 부부 출산율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 정책의 무게 중심을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혼인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주거 문제 등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혼 부부들은 이미 충분한 수의 아이를 낳고 있고, 저출산 문제는 낮은 혼인율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이미 아이를 낳은 기혼 부부에게 출산을 늘리도록 하는게 예산 낭비인 셈이다.
무엇보다 15~49세 가임기에 있는 모든 여성을 결혼 유무와 관계 없이 출산율을 계산하는 대상으로 삼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집단 선정 오류가 저출산 문제의 올바른 해법을 고민하는 걸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17년 전체 출생아 수는 35만 7,771명으로 2016년보다 4만 8,472명이 줄어들었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줄어들면서 출산율도 떨어졌는데,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이는 1년 전인 1.17명보다 0.12명 줄어든 수치다. 인구학자들은 향후에도 현재와 같은 인구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선율이 2.1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대체출산율이라고 부르는데, 대체출산율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의 출산율을 보면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이 된다. 통계청에서는 2017년 수준인 1.05명의 출산율이 계속 이어지면 2027년부터 대한민국 인구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미 2018년 출산율은 1.0명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2015년 인구 감소 시점을 2031년으로 예측했던 걸 떠올리면 인구 감소 시점이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한번 줄어들게 되면 감소 추세를 되돌리는 게 매우 힘든 특성을 가진다. 그 이유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모 세대의 인구가 줄어버린 상황에서는 출산율을 높이더라도 태어나는 신생아 수 자체가 늘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와 사회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열심히 노력해서 출산율을 높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노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어린으 되어 부모가 되기까지는 대략 30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합계출산율이 1명이라는 건 한 세대를 지날 때마다 신생아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두 세대만 지나도 새롭게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조부모 세대의 1/4로 줄어들게 된다. 아이를 충분히 낳을 수 있는 30대 부부 1천 쌍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부부 1천 쌍이라고 했으니 남자 1천명, 여자 1천명이 있다. 이 집단의 합계출산율은 1명인데, 그렇다면 총 1천명의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각각 500명이라 가정한 뒤, 30년 후에 이 아이들까리 다시 결혼해 500쌍의 부부가 되었다고 쳐보자. 이때도 합계출산율은 1명이다. 그렇다면 이 번에는 총 5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다. 본래 2천 명이었던 한 세대의 인구수가 두 세대 만에 500명, 즉 1/4로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될 수 있는 세대 인구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선 출산율을 필사적으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해결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흔히 출산율이라고 하면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의 뜻은 이런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출산율의 뜻과 합계출산율의 통계적 정의가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합계출산율
합계출산율이란, 출산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15세부터 49세 사이의 모든 여성을 기준으로 해당 연령대에 속한 1명의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를 의미한다. 기혼인지 미혼인지 구별하지 않고 그 연령대에 속한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다. 합계출산율은 해당 년도에 특정 연령대(15~49세)의 여성들이 낳은 신생아 수를 그 연령대에 속한 여성들의 수로 나눈 값이다. 이렇게 연령별로 구한 출산율을 모두 더하면 합계 출산율이 된다. 예를 들어 30세 여성들이 1년 동안 낳은 아이의 수를 전체 30세 여성들의 수로 나눠서 먼저 '30세 여성의 출산율'을 구한다. 이렇게 15세부터 49세까지 기준 나이에 속한 여성들의 연령병 출산율을 모두 구한 뒤 더하면 합계출산율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나온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의 허점
그런데 이 같은 합계출산율은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까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출생아의 98%는 혼인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 건 드물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게 일반적인 현실인데 합계출산율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까지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통계를 작성한다. 또한 청소년에 속하는 만 15~18세 여성까지 합계출산율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도 문제다. 성인이 되지 않은 이 연령대의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가정해 통계에 포함하는 것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물론 합계출산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합계출산율을 사용하는 나라가 한국뿐만은 아니다.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국제적 통계이므로,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출산율을 세계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합계출산율이 갖고 있는 허점을 외면할 순 없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출산율은 1.17명이었다. 그런데 이철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같은 해 15~49세 여성들 중에서 결혼한 여성들만 따로 추려내서 합계출산율을 계산해보았더니 2.23명이 나왔다. 이 말은 즉 결혼한 부부들만 놓고 보면 아이를 2명씩은 낳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기혼자들은 인구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이상으로 아이를 낳고 있었다. 결혼한 15~49세 사이의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삼아 구한 합계출산율을 '유배우 합계출산율' 이라고 한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의 합계출산율이다.
이철희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2000년에 1.7명이던 유배우 합계출산율은 이후 16년간 오르내림을 반복했지만 큰 틀에서는 꾸준히 상승했다. 이 같은 흐름은 결혼한 부부들이 애를 낳지 않아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인식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심지어 요즘 부부들은 2000년대 초반 부부들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고 있고, 부부 1쌍이 2명 이상씩은 낳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결혼한 부부들이 2000년대 초에 비해 더 많은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성인 남녀가 늘어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가 갈수록 줄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20~49세 여성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의 비중은 절반에 가까운 49%였다. 2000년에는 그 비중이 29.6%에 불과했다. 혼인 건수를 따져보면 2016년엔 모두 28만 1,600쌍의 부부가 결혼을 했는데, 이는 1974년 이후 42년 만에 가장 적은 수였다. 그만큼 사람들이 결혼을 안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분석 결과는 저출산 대책의 초점이 무엇이 돼야 하는가 보여준다. 저출산 대책의 무게중심을 '결혼한 부부들이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에서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 으로 옮겨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혼한 부부들을 위한 정책을 멈춰서는 안된다. 다만 출산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젊은이들이 좀 더 쉽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에 들어가는 예산과 저원의 우선순위를 '결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써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철희 교수의 연구 결과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0년 15~49세 여성들 중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비율은 70.4%였다. 이 비율이 2016년에는 51%로 줄었는데, 연구팀은 만약 2016년에 결혼한 15~49세 여성의 비율이 2000년과 같았더라면 합계출산율이 2.01명은 되었을 거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2016년에 2000년과 같은 70.4%의 혼인 비율이 유지되었다면 신생아 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2.01명은 저출산 문제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1983년 합계출산율 2.06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더라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또한 이제는 한국 사회도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의 법적 지위를 기혼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동일하게 인정하고, 미혼모의 아이가 차별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여성이 홀로 출산했을 때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의 편견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법과 제도는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를 '이미 예고된 미래' 라고 말한다. 인구 통계표만 분석해봐도 몇 년 뒤, 몇 십년 뒤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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