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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고대 그리스 조각/ 고대 바빌로니아/인더스문명/트로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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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조각

그리스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을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예술품이 대량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 고대 미술품을 최초로 전시한 것은 영국의 어르긴 백작이었다. 그는 터키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가 대사로 있던 당시에 그리스는 터키의 식민지였다. 어르긴 백작은 터키 정부로부터 '아크로폴리스의 측량, 조사, 발굴, 그리고 조각이나 비문의 운반을 허락한다' 는 증서를 받아냈다. 어르긴 백작은 이 증서를 이용해 수년 동안 많은 고대 그리스 미술품을 영국으로 옮겨서 대영박물관에 팔았다. 현재 그리스 정부는 예술품의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상대도 하지 않고 있다. 터키가 영국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수메르의 법전이 나오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의 자리를 지켰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남자는 언제라도 부인과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아내에게 생활비와 위자료를 주어야만 했다.

 또 남의 아내에게 키스를 한 사람은 아랫입술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른 남녀는 물 속에 던져 익사시켰다. 근친상간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귀양을 가거나 처형되었다.

 

인더스 문명

 역사 교과서에는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인더스 문명이 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아리아인의 침입이 있기 전에 인더스 문명은 벌써 쇠퇴하고 있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환경파괴 때문이었다. 고대 인더스 문명을 일군 사람들은 건물을 벽돌로 지었다. 벽돌은 집뿐만 아니라 신전, 도로, 배수시설 등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이 벽돌들을 굽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큰 나무들이 벌목되었다. 산이 황폐하면 산사태 등의 엄청난 재해를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인더스강 유역에 번영했던 인더스 문명은 나무를 너무 많이 잘라서 인더스강의 범람을 가져왔고 결국은 섬처럼 고립되어 쇠퇘했다고 한다. 아리아인이 침입했을 때 인더스문명은 이미 망하기 직전이었다.

 

트로이 유적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레이만은 어려서 호머의 이야기를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언젠가 호머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옛 도시 트로이를 보고 싶었다. 슐레이만은 트로이 발굴에 생애를 바칠 결심을 했지만 유적발굴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슐레이만은 우선 발굴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돈을 벌기로 했다. 20살에 암스테르담의 슈뢰더 상회에 입사하는 그는 사업가로 성공한 뒤에도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1854년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서 크리미아 전쟁이 터지자 슐레이만은 러시아 측에 무기를 밀매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 그가 얻은 부의 대부분은 무기를 밀매하여 얻은 것이었다. 무기 밀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웬만큼 모이자 슐레이만은 고대사 연구를 시작했고, 49세에 그가 평생 꿈꾸던 트로이 유적 발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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