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인문 역사

서양생활사 - 헤어뷰티

728x90
반응형

    영웅은 금발을 좋아해

 북부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던 고대 아시리아인들은 최초의 헤어 스타일리스트였다. 머리를 자르고, 곱슬거리게하고, 층이 지게 하고, 염색하는 그들의 기술은 중동 전체에서 겨룰 자가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났다. 그들의 기술은 머리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났다.

 아시리아인들은 머리를 층지게 잘랐다. 그리고 멋을 내는 고관의 머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기하학적이면서 모양 또한 비슷했다. 긴 머리는 폭포수처럼 정교하게 구불거리게 하고 동그랗게 만들어서 어꺠와 가슴에 흘러내리게 스타일링했다.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염색을 했다. 남자들은 말끔하게 다듬은 수염을 길렀는데, 턱에서 시작하여 가슴까지 물결치면서 층이 지게 했다. 왕, 군인, 귀족여인들의 풍부하고 흘러내리는 머리는 노예들이 최초의 머리 고데기인 불에 달군 쇠막대기를 이용해서 곱슬거리게 만들었다. 

아시리아인

 아시리아인들은 거의 모든 다른 화장술은 외면하고 헤어 스타일링 기술만 발전시켰다. 사람의 지위와 직업에 따라서 머리 모양을 지정하는 법도 생겼다. 그리고 이집트의 경우처럼 상류층 여성들은 공식적인 궁정의 일을 볼 때는 자기들도 남자처럼 권위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가짜 수염을 달고 다녔다.

 부분이든 전체든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보기 싫은 결점이었고 가발로 숨겨야만 했다.

아시리아인 헤어스타일

 

  아시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호머 시대의 그리스인들도 길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좋아했다. 그들은 긴 머리와 정교한 헤어 스타일로 인해 자신들이 북부에 있는 머리가 짧고 다듬지도 않는 야만인들과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산문과 시를 통해 나타나듯이 '향내나고 고귀한 곱슬머리' 에 그리스인들은 매우 집착했다.

 

 금발은 높이 평가되었다. 대부분의 그리스 영웅들은, 아킬레스, 메넬라우스, 파리스 등은 금발로 묘사되고 있다. 선천적으로 금발이 아닌 사람들은 당시 지중해의 비누 생산 중심지인 페니키아에서 수입한 거친 비누와 알칼리 표백제로 머리를 표백하거나 붉게 만들었다.

가발쓴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상

 

  특히 남자들은 금발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잠시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노란 꽃가루, 노란 밀가루, 그리고 순금가루로 만든 활석을 머리에 뿌렸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극작가, 메난드로스는 영원히 물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 남자들이 다 알듯이 머리를 탈색하는 데는 태양빛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하는 방법도 적었다.

 "머리를 이곳 아테네에서 만든 특별 연고로 감은 후 그들은 머리가 아름다운 금발로 변하기를 기다리며 한 시간 동안 햇빛 아래 모자를 쓰지 않고 앉아 있는다. 그러면 서서히 변해간다."

 기원전 303년에는 최초 직업 이발사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로마에 가게를 열었다. 로마 사회규범은 머리를 잘 다듬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머리 손질을 게을리 하면 조롱과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다. 금발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인들과 달리, 높은 사회적 정치적 위상에 있는 로마 남자들은 검은 머리를 선호했다. 나이가 든 로마 집정관과 원로원 의원들은 흰 머리를 감추려고 애썼다. 1세기의 동식물 연구가 플리니우스는 검은 머리 염색의 중요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썼다. 검은 염색약은 밤 껍질과 양파의 일종으로 길고 흰줄기에 넓고 두꺼운 잎을 가진 리크(leek)를 끓여서 만들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머리가 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약초와 지렁이로 만든 약을 밤새도록 바르고 자야 했다. 로마 시대 대머리가 되는 것을 막는 약은 으깬 도금낭 열매와 곰의 지방으로 만든 연고였다.

다양한 고대 그리스-로마  가발 조각상

 

  모든 나라에서 모두 흑발이나 금발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옛날 색슨족 남자들은 이유는 모르지만 머리와 수염을 청색, 밝은 적색, 녹색, 혹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은 모습으로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갈리아 사람들은 빨간 머리 염색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가 패션의 중재자 역할을 했던 영국에서는 당시 주요 인물들이 머리를 여왕의 색깔인 밝은 적주황색으로 물들였다. 궁정에 간 어느 대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머리가 '자연이 만든 적이 없는 색깔' 인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남녀 모두 여러 가지 색깔의 분을 머리에 뿌렸지만, 이 습관은 16세기 프랑스에서 표백하고 분쇄한 밀가루에다 향을 뿌린 것이었다. 1790년대에 마리 앙뜨와네트의 궁정에서는 분을 뿌리는 것과 다른 일반적인 머리 미용이 극치에 달했다. 머리카락은 빗질하고, 곱슬거리게 하고, 웨이브지게 하고, 가발로 기상천외한 탑을 만들어 그 위에다 씌운 뒤, 여러 가지 색깔의 분을 뿌렸다. 청색, 분홍, 자주, 노랑, 흰색이 모두 나름대로 유행했다.

 

 영국에서 머리에 분을 뿌리는 것이 최고로 유행했을 때 영국 의회는 국고를 보충하기 위해 머리분에다 세금을 매겼다. 세금이 1년에 25만 파운드가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페인에 정치적 소요가 일어나고, 머리 유행이 변덕을 부려 분칠하는 것을 한물간 것으로 만들면서 세입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녀는 했을까? 안했을까?

 머리를 염색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었다. 짜증, 발진,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세포 변화 위험은 오늘날 여러 가지 시험을 거친 조제약에도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염색약은 독성을 포함하고 있던 옛날 염색약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안전한 상업용 염색약을 개발하는 시도가 처음 성공한 것은 프랑스 화학자 외진 슐레에 의해서다. 그는 새로 발견된 화학물질 파라페닐렌디아민paraphenylenediamine을 기초로 염색약을 만들어 프랑스 무해 염색약 회사를 설립했다. 나중에는 잘 팔렸지만 처음에 이 제품은 그다지 잘 팔리진 않았다. 1년 뒤, 슐레는 로레알이라는 더 멋진 회사 이름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머리를 염색한다는 생각에 원칙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다. 이것은 여배우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여성의 단 7%만이 머리 염색을 했다. 그에 비해 오늘날은 75%가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어떻게 왔을까?

 

 크게 보아서 현대식 머리 염색약은 이전보다 더 안전한 제품이긴 했으나, 손쉽게 쓸 수 있는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재치있는 이미지 변신 광고로 인해 사용자 수가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광고는 주로 클레롤이 주도했다. 뉴욕의 카피라이터, 셜리 폴리코프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된 2개의 문구를 고안했다.

      "저 여자 했을까, 안했을까?" .....'미용사만이 확실히 알고 있지.'

 

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회사는 염색을 한 어른 모델이 점잖은 여자, 즉 한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진 광고에 어린이를 넣었다.

클레롤 社가 지면광고한 화제의 문구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최대 홍보효과를 거둔 것은 바로 '저 여자 했을까, 안했을까" 라는 이중적 질문이었다. '저 여자가 뭘 하고 뭘 안했단 말이야?" 하고 사람들은 농담을 했다. '라이프'지는 이 광고가 너무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점이 있다고 해서 싣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저항에 반격하기 위해 클레롤 운영자들은 이 광고를 남자와 여자들에게 시험해 보라고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된 '라이프'지의 심의위원들에게 도발했다. 그 결과는 놀랄 만한, 아니 어쩌면 예측할 만한 것이었고,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문구에서 성적인 암시를 발견한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남자는 하나같이 성적인 암시를 느꼈던 것이다. 

 '라이프'지는 양보하고 말았다. 이 제품은 너무나 잘 팔렸다. 머리 염색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일이 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까지는 미국 여자의 거의 70%와 남자 2백만명이 타고난 머리 색깔을 바꾸었다. 현대 미국인들은 3천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유행을 선택한 것이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염색하는 남자의 수가 여자를 앞질렀다는 사실이다.

 

    아우... 무거워!

 아시리아인들이 고대의 뛰어난 헤어 스타일리스트이긴 했지만, 그보다 1500년 전에 가발을 예술로 만든 사람은 이집트인들이었다. 서구에서 인조 머리카락을 사용하는 개념은 바로 그들로부터 시작했다. 가발 기능이 대머리를 감추기보다는 격식을 갖춘 파티 복장을 보완하기 위함이긴 했지만.

 

 많은 이집트 가발이 오늘날도 우수한 상태로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화학 분석을 해보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땋은 머리와 꼰머리가 식물 섬유와 인체 모발로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집트 가발 스타일

 

   어떤 장식형 가발은 크기가 엄청났다. 그리고 무거웠다. 기원전 900년에 살았던 가발의 여왕 이심케브는 국가 행사 때 가발을 너무 높고 무겁게 만들어서 시종들이 옆에서 부축해야만 했다. 현재 카이로의 박물관에 있는 이 가발은 화학 시험 결과 전적으로 갈색 머리카락으로만 짜여져 있음이 판명되었다. 당시의 다른 가발들처럼, 높이 치솟은 스타일은 꿀로 코팅을 해서 지탱시켰다.

커다란 가발을 풍자한 만화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에서는 블론드 가발이 유행했다. 그리스 창녀들이 자기 머리칼에 표백을 하거나 분을 뿌리는 것을 선호했던 반면 로마 여인들은 독일 포로들의 머리에서 뽑아낸 가는 아마색의 머리를 선호했다. 이것은 갖가지 형태의 블론드 가발로 만들어졌다. 1세기 로마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는 마음대로 벗겨낼 수 있는 독일인 머리카락이 풍부했기 때문에 로마의 남녀들은 대머리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염려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가발이 워낙 무거워 하인이 받쳐주는 모습 풍자화

 

 블론드 가발은 마침내 로마 창녀들, 혹은 그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상표가 되었다. 방탕한 여제 메살리나는 로마 창녀촌을 순회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는데, 그럴 때면 꼭 '노란 가발'을 썼다. 그리고 로마의 가장 악명 높은 통치자 칼리굴라도 쾌락을 찾아 거리를 헤메일 때문 밤에 비슷한 가발을 썼다. 블론드 가발은 오늘날 무릎까지 오는 흰 장화나 미니스커트가 창녀의 기본 복장이듯이 틀림없는 창녀 복장이었다.

 기독교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모든 가발 착용을 금지시키려고 거듭 시도했다. 1세기 교부들은 가발 쓴 사람은 기독교식의 축도를 받을 수 없다고 정했다. 2세기에 그리스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설교했다.

     "모든 가발은 악마가 만들어 낸 위장이다."

 

그리고 3세기에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가발을 쓴 사람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금하면서 이렇게 질타했다.

    "너희들이 이교도들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느냐?"

 

 그러한 비난은 692년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 해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는 가발을 포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파문했다. 12세기 왕의 주교 임명권을 놓고 교회에 맞서서 마침내 파문을 당했던 헨리 4세 조차도 교회에서 추천하는 짧고, 깔끔하고, 장식을 하지 않은 헤어 스타일을 고수했다. 헨리는 궁정에서 긴 머리와 가발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교회 신도가 줄어드는 더 다급한 문제에 신경써야 했던 1517년 종교개혁 때까지 가발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교회의 기준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1580년에는 가발이 다시 헤어 패션의 최신 유행이 되었다. 

곱슬머리와 염색과 가발이 다시 유행한 데는 한 사람의 공이 컸다. 적주황색 가발을 엄청나게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는 것을 감추기 위해 주로 가발을 사용했다. 가발은 너무 흔한 것이 되어서 눈길을 끌지 않을 정도였다. 메리 여왕이 적갈색의 가발을 썼다는 사실은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잘렸을 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가발 인기가 최고에 달했을 때 베르사유 궁궐에서는 궁궐 내에 살면서 전적으로 가발만 만드는 사람을 40명이나 고용했다.

 

 또 다시 교회가 가발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왜냐면 많은 성직자들이 당시 유행하던 긴 곱슬머리 가발을 썼기 때문이다. 17세기 기록에 의하면 가발을 쓰지 않은 사제가 미사를 드리거나 축도를 하려는 사제의 가발을 벗겨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샹프롱 출신의 프랑스 신부 장 밥티스 띠에르는 가발의 악덕과, 가발 쓴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과, 몰래 가발을 벗기는 방법에 대해서 책을 냈다.

 

 교회는 마침내 타협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머리이거나, 병이 들거나, 나이가 많은 평신도와 신부에게는 가발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들은 봐주지 않았다.  

20세기까지 남아있던 법정 가발

 

 18세기 런던에서는 변호사들이 쓰는 가발이 너무 비싼 것이어서 도난을 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가발 도둑들은 주로 복잡한 거리에서 활동했는데, 작은 아이를 태운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아이가 하는 임무는 갑자기 일어나서 가발을 벗기는 것이었다. 당한 사람은 가발이 벗겨져서 면도한 맨 머리가 드러난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 때문에 난리를 피우다가 도둑을 놓쳤다. 법관들 사이에는 법관의 가발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복장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좋아했던 그것

 

 보드킨bodkin은 그리스와 로마 여인들이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길고 곧은 장식용 핀이었다. 모양과 기능에 있어서 이것은 원시시대 사람들과 오늘날 미개한 부족들이 사용하는 날씬한 동물 척추뼈나 엉겅퀴 가시를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고대 아시아 무덤터에서는 뼈, 쇠, 동, 은, 금으로 만든 수십 개의 머리핀이 발견되었다. 어떤 것은 밋밋하고 또 어떤 것은 화려하게 장식되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머리핀의 모양이 지난 만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집트 헤어핀

 

 클레오파트라는 길이가 8인치나 되고 보석이 박힌 상아 머리핀을 좋아했다. 로마인들은 머리핀 속을 파내고 거기다 독을 숨겼다. 이것의 디자인은 클레오파트라가 자결하는 데 사용했다는 핀과 유사하다.

 곧은 모양의 핀은 2세기가 경과하면서 U자 모양의 보비bobby핀이 되었다.

 

 17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가발이 유행하면서 원래 머리는 짧게 자르거나 핀으로 머리에 바싹 붙여야만 했다. 이처럼 '핀으로 머리를 짧게 처리하는 것bobbing' 이 가발 쓰기도 편했고, 가발을 벗은 다음 용모를 다듬기도 편했다. 그 당시에는 길고 곧은 핀이나 U자 모양의 머리핀 모두 bobbying핀이라고 불렸다. 18세기가 되면서 영국에서는 이 용어가 bobby핀으로 바뀌었다. 19세기에 강화한 철선에다 검은 래커칠을 한 두 갈래 핀이 대량생산되면서 곧은 모양의 핀이 거의 사라졌고, 이 핀이 보비bobby핀이라는 이름을 독점하게 되었다.

 

    진공청소기와 믹서기의 귀여운 딸

 오늘날 헤어 드라이어는 서로 연관이 없는 두 개의 발명품, 즉 진공청소기와 믹서기로부터 생겨난 물건이다. 이것의 원산지는 미국 위스콘신 주의 라신이다. 그리고 처음 나온 모델 중 '레이스' 와 '사이클론' 이라는 두 개의 모델은 위스콘신에 있는 라신 유니버셜 모터 회사와 해밀튼 비치에 의해 제조되어 1920년에 등장했다.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아이디어는 진공청소기 광고가 처음 나왔을 때 착안되었다.

 20세기 초에는 한 제품, 특히 전기 제품의 여러 기능을 선전 보급하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전기가 역사상 최고의 일하는  말' 이라고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판매를 높였고, 사람들은 다기능의 제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초기의 헤어 드라이어

 

 진공청소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위 뉴매틱 클리너의 광고는 여자가 한가하게 앉아 진공청소기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뜨거운 공기를 왜 낭비하느냐는 철학에 바탕을 둔 이 그림은 청소기의 전면이 먼지를 빨아들여 안전하게 처리를 하는 한편 뒷면에서는 '배기구에서 나오는 맑고 신선한 공기가 나온다' 는 설명으로 독자들을 설득했다. 처음에 나오는 진공청소기가 꽤 잘 팔리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제품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아이디어 자체는 이 때 착안되었다. 그러나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헤어 드라이어 개발이 늦어진 것은 발명가들에게 '소형모터' 라고 알려진 작고, 성능 좋고, 전력이 낮은 모터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에 믹서기가 등장했다. 

 

 위스콘신 주의 라신은 최초의 밀크 쉐이크 믹서가 탄생 곳이기도 하다. 믹서기는 1922년에 가서야 특허 등록이 되었지만 소형 모터를 써서 이것을 작동시키려는 노력은 라신 유니버셜 모터 회사와 해밀턴 비치가 10년 이상이나 해오던 터였다.

 그래서 원리상으로는 진공청소기의 뜨거운 공기배출구와 믹서기의 작은 모터가 만나서 라신이 제조한 현대식 헤어드라이어가 탄생한 것이다. 불편하고, 열효율도 적고, 비교적 무겁고, 자주 파열되기는 했지만 처음 나온 헤어 드라이어는 머리를 손질하는 데 진공청소기보다는 훨씬 편했고 앞으로 지속될 유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들어 다양한 온도와 속도 조절 기능이 개선되었다. 포터블 드라이어에 결정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제품은 1951년 씨어즈 로벅 백화점 추동 카탈로그에 등장했다. 12불 95센트에 팔린 이 기구는 헤어드라이어와 바람이 나오는 곳에 직접 연결해서 여자들 머리에 딱 맞출 수 있느 핑크 플라스틱 보네트였다.

 헤어 드라이어는 처음 등장한 해부터 여자들에게 인기 있었다. 그러나 드라이어 시장이 급격하게 확장된 것은 1960년대 후반들어 남자들이 머리를 길러 말리고 손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부터였다. 이는 그 당시 장발이 유행했기 떄문이다.

 

 

 

     이빨로 빗다

 가장 원시적인 빗은 말린 큰 물고기의 등뼈를 말린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이것은 아직도 아프리카 오지 부족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빗의 독특한 디자인은 영어의 빗comb이라는 말의 고대 인도유럽어원 gombhos의 의미가 이빨teeth이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인간이 만든 최초 빗은 6천년 된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정교한 디자인인데, 어떤 것은 곧은 이빨이 한 줄로, 어떤 것은 두 줄로 나 있었다. 또 어떤 것들은 첫째  줄은 가는 이빨로, 둘째 줄은 굵은 이빨로 만들어졌다. 이집트 사람들이 멋을 부리는 데 가장 기본적인 도구였던 빗은 머리를 빗는 역할과 머리를 특정 스타일로 고정시키는 핀의 역할을 했다. 

고대 이집트 빗

  고고학자들은 거의 모든 문화들이 독자적으로 빗을 개발하고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인들만은 예외였다.

 영국 제도의 해안을 따라 거주하던 이들은 머리를 빗지 않은 채 생활했다. 심지어 이발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그들이 빗을 사용한 것은 789년 덴마크인의 침입 이후라고 추정된다. 800년대 중반까지는 덴마크인들이 왕국 도처에 자리를 잡았고 해변에 사는 영국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머리 빗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로마 빗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머리를 빗는 것이 발 씨는 것과 같이 종교적 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저녁 키도 전에 옷을 입을 때 신부의 머리를 빗기는 적절한 방법에 대해서 세심한 지침이 있었다. 기독교 순교자들은 지하납골당에 빗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실제로 상아와 금속으로 된 많은 빗들이 발견되었다. 종교 역사가들은 빗이 한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띄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중세 때 초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서 분명히 빗 모양의 이미지가 발견되었던 신비한 사실을 지적한다. 

 

 빗의 마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1600년대에 유럽 일부 지방에서는 납으로 만든 빗으로 머리를 자주 빗으면 백발이 원래 색깔로 돌아간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질이 좋지 않은 부드러운 검은 색의 납이 머리카락에 미세하게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잇지만, 머리를 빗은 사람이 염색을 하고 이것을 빗 때문이라고 했을 증거가 있다. 이러한 의혹은 1600년대 말에 '납으로 만든 빗 lead comb' 이라는 말이 백발을 염색한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스위스에서 최초 가정용 전기빗이 나왔던 1960년까지는 빗의 디자인에 있어서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반응형

'고전 인문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생활사 - 거울  (2) 2023.11.24
서양생활사 - 화장품 역사3  (2) 2023.11.17
서양생활사 - 화장품 역사2  (0) 2023.11.05
서양생활사 - 화장품 역사1  (0) 2023.11.05
서양생활사 - 비누 & 샴푸  (2)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