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화장품
인간은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며 단지 자연생애 중에서 가급적 오래 유지하려고만 해도 돈이 많이 든다. 미국 남녀들은 해마다 5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미용실과 이발관, 화장품 카운터에서 쓰고 있다. 몸단장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않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적어도 8천년이나 지속되어 온 일이기 때문이다. 얼굴과 몸에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분을 바르는 것, 그리고 머리를 염색하는 것은 종교적이거나 전쟁 의식의 일부로 시작되었고, 기록된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얼굴과 눈화장품을 갈고 섞는데 사용하는 팔레트를 발굴했는데, 이것은 기원전 6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4천년까지 미장원과 향수 공장이 성업할 정도로 화장기술이 고도로 숙련되고 널리 이용되었다. 그 당시에 가장 애용하던 눈화장 색깔은 녹색, 가장 좋아하는 립스틱은 청흑색, 그저 봐줄 만한 립스틱은 루즈 레드였으며, 유행을 따라는 이집트 여인들은 손가락과 발의 피부에 헤너 잎으로 적황생 물을 들였다. 그리고 가슴을 드러내 놓고 다니던 시대에는 여자들이 가슴의 정맥을 푸른색으로 강조했고 젖꼭지는 금으로 입혔다.
이집트 남자들도 여자 못지 않게 외모에 신경썼다. 살아있을 때 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도 그들은 내세에 사용할 수 있도록 풍부한 화장품으로 무덤을 가득 채웠다. 1920년대에 기원전 1350년경을 지배했던 투탄카멘 왕의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스킨 크림, 립 칼라, 뺨에 바르는 루즈 병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아직도 사용 가능해 보일 정도로 약한 향기를 담고 있었다.
사실 기독교 시대 이전에는 모든 문화에서 사람들이 분, 향수, 그리고 물감으로 자신들을 장식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유일한 예외는 그리스인들이다.
이집트인들의 화장술을 받아들인 로마인들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자연적인 모습을 선호했다. 기원전 12세기 도리아의 침입으로부터 700년까지, 힘들게 살아가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치장하는 나태한 즐거움을 누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의 황금기에 사회가 정착되고 번성했을 때에는 남성다움과 자연스러운 소박함의 이상이 지배적이었다. 학문과 체육이 발달했다.
여자들은 집안의 재산이었다. 장식하지 않고 옷을 입지 않은 남성은 완벽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 시대에 이집트인들로부터 흘러온 화장 기술이 고급 매춘부들을 통해 그리스에 전달되었다. 부자들의 정부들은 화장한 얼굴, 장식한 머리, 향수 뿌린 몸매를 자랑했다. 그들은 또한 향내나는 액체나 기름을 입에 머금고 혀로 굴림으로써 숨결조차 향기나게 했을 정도였다. 역사상 최초의 이 입냄새 제거제는 삼키지 않고 적절한 떄를 봐서 몰래 뱉었다.
그리스 정부들에게서 우리는 여성의 금발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밝은 색은 순수함과 높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성적인 매력을 의미했다. 정부들은 노란색 꽃잎, 꽃가루, 포타슘(potassium) 소금 등으로 만든 사과향 포마드를 발라서 블론드 색깔을 냈다.
그리스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로마 남자와 여자들은 화장품 사용에 있어서 절제할 줄 몰랐다. 동양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로마 군인들은 인도의 향수, 화장품, 그리고 노란 밀가루, 꽃가루, 고운 금가루 등으로 만든 블론드 염색약을 가지고, 또 많은 경우 몸에다 바르고 귀환했다. 유행을 따르는 로마 여인들이 오늘날 이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화장용품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1세기의 경구작가 마르티알리스는 자기의 여자 친구 갈라가 용모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을 비난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갈라. 당신이 집에 있을 때에도 당신의 머리카락은 미장원에 있고, 밤에는 이빨을 빼내서 수백 가지 화장품 상자 속에 쌓아놓고 잠을 자니, 당신의 얼굴조차도 당신과 같이 잠자지 못하는군. 그리고 당신은 다음날 아침 서럽에서 꺼낸 속눈썹 밑으로 남자들에게 윙크를 보내지.'
화장품을 좋아한 로마인들의 성향을 고려해 어원학자들은 '화장품(cosmetic)' 이라는 말이 줄리어스 시저 제위시절에 로마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품 상인이었던 코스미스Cosmis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최근에 그들은 이 말이 장식기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코스메티코스Kosmetikos에서 나왔다고 결론지었다.
이집트인들의 눈화장
눈이 신체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통하여 가장 정교하게 장식되어 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4천년에 이미 얼굴 화장의 주된 포인트로 눈에 초첨을 맞추었다. 그들이 선호한 녹색 아이섀도우는 녹색의 동광인 공작석 분말로 만들었으며, 윗눈썹과 아랫눈썹에 두껍게 발랐다. 눈에 윤곽을 그리고 속눈썹과 눈썹에 검은 색을 칠하는 데는 콜Kohl이라고 불리는 먹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안티몬 가루, 태운 아몬드, 흑색 구리 산화물, 그리고 갈색 황토로 만든 것이었다. 먹은 작은 설화석고 단지에 넣고 침으로 갠 뒤, 오늘날의 눈썹 그리는 연필과는 달리 상아, 나무, 혹은 철제 막대기로 발랐다. 가득 찬 콜 단지가 아직도 수십 개 보존되어 있다.
멋쟁이 이집트 남녀는 역사상 최초의 눈 반짝이도 칠했다. 그들은 빛이 나는 벌레 껍질을 절구에 넣고 빻아서 거친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공작석 분말로 만든 아이섀도우와 섞었다. 많은 이집트 여자들은 눈썹을 밀고 가짜 눈썹을 그렸다. 나중에 그리스의 정부들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진짜 눈썹이든 가짜 눈썹이든 코 위에서 서로 만나는 눈썹을 사람들은 좋아했고 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눈썹을 콜 연필로 연결했다.
눈화장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형태의 화장이었다. 이 풍습은 기원전 9세기 아합 왕의 아내였던 이세벨 여왕에 의해서 기원전 850년경 이스라엘에서 소개되었다. 시돈의 공주였던 그녀는 당시 문화와 유행의 중심지였던 페니키아의 풍습에 익숙했었다. 성경에서는 그녀의 화장품 사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열왕기 하 9장 30절에
'예후가 이스라엘에 이르렀을 때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궁전의 창문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자기 아들의 경쟁자인 예후를 놀렸다. 마침내 예후의 명령을 받은 그녀의 내관들이 그녀를 밀어서 떨어뜨렸다. 그녀가 악녀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평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선지자였던 엘리야와 엘리사를 무시한 때문이었다. 그녀로 인하여 화장품의 평판이 몇 세기 동안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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