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영국의 전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영웅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아서(Arthur)왕은 그의 아버지 유서(Uther)왕이 골로이스(Gorlois) 공작의 아내인 이그레인(Igraine)을 사랑하여 얻은 사생아였다. 유서왕은 일찍 죽었기에, 마법사이자 드루이드인 멀린(Merlin)이 아서왕을 키웠다.
아서왕은 15세 무렵에 바위에서 뽑기만 하면 영국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진다는 신비한 칼 엑스칼리버를 오직 혼자서 뽑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원탁의 기사단을 만들고 영국을 침입하는 색슨족을 물리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조카(혹은 아들)인 모드레드(Mordred)와의 내전으로 태평성대는 끝나고 말았다. 그는 캄란 전투에서 모드레드한테 입은 상처를 치료하러 여왕들과 귀부인들이 탄 배에 몸을 싣고, 서쪽 바다 건너의 신비한 장소인 아발론으로 떠났다.
케이(Kay)는 아서왕의 양아버지 엑터(Ector)경의 큰아들로 아서왕과 어릴 적부터 의붓형제이자 친구로 자랐다. 그는 15세 무렵에 땅속에서 솟아난 대리석 바위에 꽂힌 신비의 칼 엑스칼리버를 뽑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자, 자신이 뽑은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곧바로 들켰다. 나중에 아서왕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자 그가 만든 원탁의 기사단에 가입하였다.
가웨인(Gawain)은 태양이 가장 뜨겁게 빛나는 정오가 되면 힘이 평소보다 훨씬 강해지는 능력을 가진 기사였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원래 켈트족의 태양신이었다. 가웨인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크리스마스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 나타나 도전을 한 녹색의 기사와 혼자서 싸워서 이긴 일로 유명해졌다.
가웨인에게는 동생들인 가레스(Gareth)와 가헤리스(Gaheris), 아그라베인(Agravain)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원탁의 기사단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랜슬롯과 아서왕의 왕비 기네비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폭로했다가, 랜슬롯의 손에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 일로 가웨인은 랜슬롯과 원수 사이가 되었다.
트리스탄(Tristan)은 아일랜드를 공포에 떨게 했던 용을 죽이고, 아름다운 공주 이졸데와 사랑에 빠졌으나 이졸데가 콘월의 마크왕과 이미 약혼한 사이라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팔라메데스(Palamedes)는 원래 사라센, 즉 이슬람교도였다가 두 형제 사피르(Safir)와 세그와리드(Sedwaride)를 데리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원탁의 기사에 합류했다. 필라메데스는 퀘스팅 비스트(Questing Beast)라는 괴물을 잡으러 쫓아다녔는데, 퀘스팅 비스트는 뱀의 머리, 표범의 몸, 사슴의 발, 그리고 에메랄드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졌고 뱃속에서 사냥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괴물이었다.
모건 르 페이(Morgan le Fay)는 이그레인이 골로이스 공작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아서왕과 이부남매가 된다. 그녀는 아서왕 전설에서 시종일관 동생 아서왕을 미워하여 온갖 마법과 속임수를 동원하여 죽이려 들었으나, 멀린과 원탁의 기사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 하지만 훗날 캄란 전투에서 아서왕이 치명상을 입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아발론으로 배를 타고 떠난 여왕들 사이에는 그녀가 끼어 있었다.
랜슬롯(Lancelot)은 프랑스 밴 왕과 엘레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호수의 요정이 그를 납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수의 기사'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그는 아서왕의 왕비 기네비어를 사랑하는 불륜을 저질렀는데, 이로 인해 아서왕과 사이가 나빠져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을 이끌고 아서왕을 상대로 내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랜슬롯은 아서왕에 대한 충성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아서, 누구도 아서왕을 해치지 못하게 막았다.
나중에 아서왕이 캄란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아발론으로 떠나자 랜슬롯은 죄책감을 느껴 기사를 드만두고 수도사가 되었다. 훗날 랜슬롯이 죽자 그가 머무르던 오두막이 신비로운 빛과 향기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보르스(Bors)는 랜슬롯의 사촌으로 랜슬롯을 따라다녔다. 그는 랜슬롯이 아서왕을 상대로 일으킨 내전에 참가하여 아서왕을 죽일 뻔했으나 랜슬롯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나중에 랜슬롯이 수도사가 되어 죽자 그의 시체를 프랑스로 가져갔다.
갈라하드(Galahad)는 랜슬롯이 어부왕 펠레스의 딸인 일레인과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다. 그는 모든 원탁의 기사들이 끝내 찾지 못한 성배(예수가 죽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셨던 잔)를 겸손한 마음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또한 갈라하드는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성스러운 창을 가져와 창날에서 떨어지는 피로 외할아버지 펠레스왕의 병을 치료했다.
기네비어(Guinevere)는 아서왕의 왕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랜슬롯과 불륜에 빠져 영국을 내전으로 몰고 갔다. 그녀는 아서왕이 아발론으로 떠나자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평생 수녀로 살다가 죽었다. 그녀의 시신은 랜슬롯이 수습해서 묻어주었다. 랜슬롯도 수도사로 살다가 죽었으니 기네비어와 랜슬롯은 참으로 비극적인 사랑의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발론
아발론(Avallon)은 중세 유럽, 영국의 신화적 영웅인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섬이다. 아발론이라는 단어는 잉글랜드 작가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 1100~1155)가 쓴 책 '영국 왕의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아발론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영국 서부 지역인 웨일스의 언어로 사과나무를 뜻하는 아발렌(Avallen)에서 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래된 아일랜드어로 사과를 뜻하는 단어 아발(Avall)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몬머스의 제프리는 아벌론을 '과일나무의 섬'으로 묘사했으며, 고대 영국과 아일랜드 켈트족은 먼 서쪽 바다에 사과가 잔뜩 열리는 나무로 가득한 낙원인 '사과의 섬이 있다고 믿었다.
몬머스의 제프리는 '영국 왕의 역사'에서 아발론은 아서왕이 가진 신비한 검 엑스칼리버(Excalibur)가 만들어진 곳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5세기 잉글랜드 작가 토머스 맬러리가 편찬한 '아서왕의 죽음'에 의하면, 아서왕이 반역자 모드레드와 캄란 전투에서 싸우다 치명상을 입고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아발론으로 떠났다고 한다.
'아서왕의 죽음' 에서 아서왕이 아발론으로 떠나는 것을 묘사한 장면은 대략 이렇다. 아서왕은 자신을 따른 충실한 신하 베디비어(Bedivere)의 부축을 받아서 바닷가로 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배에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베일을 머리에 쓴 여러 명의 여왕과 귀부인들이 타고 있었으며, 그녀들은 모두 슬프게 울면서 아서왕을 맞아들였다. 놀랍게도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아서왕을 괴롭히던 그의 누이이자 마녀인 모건 르 페이(Morgan le Fay)도 있었다. 모건은 자신의 무릎에 아서왕의 머리를 받치면서 "오 , 내 동생.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떠나 있었어? 네 머리에 난 상처가 싸늘하게 식었잔아?"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서 모건은 다른 여왕 및 귀부인들과 힘을 합쳐서 노를 지어 배를 뭍에서 떼어내고, 바다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디비어는 떠나는 배를 보면서 "아서왕이시여, 저만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시면 앞으로 저는 어찌됩니까?" 하고 슬프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아서왕은 "편하게 마음을 먹게. 이제는 그대 뜻대로 살게, 나는 상처를 치료하러 아발론으로 가네. 만약 내 소식을 들을 수 없다면, 내 영혼을 위해서 자네가 신에게 기도를 해주게" 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여왕들과 귀부인들은 크게 다친 아서왕을 보면서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베디비어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마침내 배가 수평선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자, 베디비어는 슬프게 울면서 숲으로 걸어갔다.
아서왕 전설은 이렇게 끝난다. 그런데 1168년 잉글랜드와 국왕 헨리2세한테 아서왕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는데, 그 편지에는 아서왕 본인이 아발론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님프(Nymph) 자매들에 의해 치료를 받아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서왕이 여왕과 귀부인들의 간호를 받으며 배를 타고 떠난 아발론은 원래 켈트족 신화에서 신들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만이 가는 섬이다. 아발론 섬의 중심부에는 황금 사과가 열리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래서 '사과의 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섬의 들판에는 일부러 사람들이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온갖 종류의 곡식과 포도가 열려, 이 섬에는 농부도 없고 쟁기질을 할 필요도 없다.
또한 아발론은 죽음이나 늙음 같은 현실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아름다움과 즐거움만 존재하는 낙원이기도 하다. 아발론에서는 선량한 남자와 여자들이 이슬맺힌 풀이 우거진 초원 위에서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태양이 언제나 땅에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다. 섬의 중심부에는 황금사과가 열리는 나무 이외에도 신기한 것이 더 있는데, 마르지 않는 샘물과 시냇물이 흘러내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활력을 얻고 지치지 않는다.
아울러 아발론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은 큰 연못이 넘쳐흐를 만큼 가득히 우유를 생산하며, 아발론의 공중에는 투명한 유리 궁전이 떠 있어서 축복을 받은 영혼들은 그 궁전으로 초대를 받아 잔치를 벌이며 즐겁게 산다.
아발론은 같은 켈트족 신화에서 먼 바다 건너의 섬에 있다는 낙원 티르나 노그와도 거의 비슷한 곳이다. 이는 켈트족이 공통적으로 불멸의 낙원인 섬을 믿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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