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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 귀신 요괴 괴물

켈트족의 성직자, 드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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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 하면 유대인의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를 양대 축으로 한다. 그런데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세에 가려셔 그렇지 서양 문화의 곳곳에 묻어있는 것이 켈트족 문화다. 인종,종교,풍습,문화 등에서 켈트족이 남긴 유산은 서양 문화 곳곳에 뿌리내렸다. 각종 게임이나 소설, 만화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 같은 대중예술 작품들에서 신비한 마법사로 그려지는 드루이드는 본래 고대 유럽을 지배했던 인도-유럽어족 계통 켈트족의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모든 켈트 부족은 성직자 계급인 드루이드를 두었는데, 그들은 켈트족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왕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무리 권력이 큰 왕이라고 해도 드루이드들에게 자문한 다음에, 비로소 일을 벌였다. 영국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위대한 영웅 아서왕의 스승이자 참모인 멀린이 바로 드루이드였다.

 또한 켈트족은 드루이드를 죽이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었으며,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도 드루이드들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다. 전쟁이 나서 군대를 따라나선 드루이드들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다. 전쟁이 나서 군대를 따라나선 드루이드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약초 치료법을 이용해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고, 전사한 병사들의 영혼을 무사히 저승으로 보내는 천도제도 치렀다. 아울러 전투 직전에 양 군대의 선두에는 반드시 드루이드가 나와서, 상대편 군대에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어 그들이 패배하도록 바라는 의식을 행했다.

 이처럼 드루이드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라, 부족민들을 상대로 생활과 신앙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왕족과 귀족을 대상으로 부족이 나아가야할 길을 가르쳐주는 역할도 맡은 일종의 지식인이자 의사이자 학자였다. 그래서 드루이드는 왕족이나 귀족을 대신해 사실상 켈트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위치에 있었다. 이런 내용들은 고대 인도의 사제 계급인 브라만과 비슷하다. 브라만은 성직자인 동시에 지식인이자 학자였으며, 그들은 왕족과 귀족인 크샤트리아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 그리하여 인도 사회에서 브라만을 죽이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간주될 정도의 큰 죄악으로 여겨졌다. 이는 켈트족과 고대 인도인들이 인도-유럽어족에 속했고 서로 비슷한 문화적인 환경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드루이드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대한 내용을 문자로 남기지 않았다. 원래 켈트족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지식을 외워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는 구전 방식을 따랐다. 그러니 드루이드교의 교리도 문자로 쓴 경전에 남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에 살던 켈트족의 일파인 갈리아족을 정복한 로마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기에 실린 드루이드교의 교리는 다음과 같다. 드루이드들은 사람이 죽어도 몸만 사라질 뿐, 그 영혼은 결코 죽지 않아서 다른 몸을 찾아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쉽게 표현하면 환생이다.

 드루이드들은 세계를 유지하는 힘이 '재생'과 '균형'이라고 믿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생명을 살라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의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루이드들은 아픈 환자를 치유하거나 풍년을 기원하려면 반드시 살아 있는 제물을 신들에게 바쳐 희생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종교에는 숭배하는 신이 있기 마련이다. 드루이드들이 믿었던 신들의 이름은 기독교로 개종한 아일랜드 켈트족이 그들의 조상들이 믿었던 신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한 '에린 침략의 책'에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켈트족은 태양의 신 루,  바다의 신 마나난, 하늘의 신 누아다.  전쟁의 여신 모리안, 죽음의 신 케르눈노스, 저승의 신 돈 등 수많은 신을 섬겼다. 

 드루이드들은 모든 인간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며, 저승에는 죽은 자를 편안히 대우하는 낙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아름다운 낙원 아발론은 바로 드루이드들이 말한 저승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이다. 

 드루이드들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신들의 힘을 가둘 수 없다고 여겨 신들을 섬기는 사원이나 건물을 따로 짓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숲속에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서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신들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영국의 유명한 석조 유적인 스텐헨지에서도 드루이드들은 태양과 별들의 운행을 점치고 신들을 숭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 스톤헨지가 드루이드들이 지은 건물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으나, 21세기 들어 영국 고고학계가 방사능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정밀 검토한 결과, 스톤헨지는 영국에 켈트족이 상륙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4,000년에 건설된 유적으로 밝혀졌다. 말하자면 드루이드들은 자신들보다 더 오래된 고대 유적인 스톤헨지를 신비하게 여겨 신들을 숭배하는 데 사용했던 것이다.

 켈트족 사회에서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드루이드가 될 수 있었다. 천주교에서 남자만 정식 사제가 되고 여자는 수녀에 머무는데 수녀는 남자 신부와 동급이 아니라는 점을 본다면, 드루이드가 천주교 성직자보다 양성 평등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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