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
제나(Xana)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전설에 등장하는 요정이다. 제나들은 분수와 강, 폭포 같은 물속이나 숲이 우거진 지역과 동굴에서 살아간다. 모든 제나는 금색이나 연한 갈색을 띤 길고 가느다란 곱슬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들의 머리카락은 태양이나 달에서 짜냈다고 표현할 만큼 섬세하다.
제나는 지나가는 목마른 여행자들한테 나타나서 물을 주며 갈증을 풀어준다. 또한 친절한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그들한테 황금이나 은을 선물로 준다. 아울러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봄여름 밤에 제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제나들의 노래는 사람한테 최면을 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어,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반면 순수하지 못한 더러운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제나들의 노래를 들으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제나의 특성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요정 사이렌에게서 유래한 듯 하다. 바다의 요정 사이렌들은 지나가는 뱃사람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데, 그 노래는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라 뱃사람들은 정신이 혼란해지고 분별력을 잃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러한 사이렌의 특성이 스페인으로 전해지면서, 사악함은 줄어들고 아름다운 부분이 증폭된 것이 제나의 노래일 듯 하다.
실제로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제나가 고대 로마 신화의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제나라는 이름이 디아나와는 다르고, 그 유래를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제나가 선량하게만 구는 것은 아니다. 제나는 사람한테 나쁜 일도 저지른다. 일부 제나들은 분수나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덮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음식들을 훔쳐서 달아난다. 성질이 짓궂은 제나들은 사람탄테 접근하여 "내가 당신들한테 보물을 주겠어요" 라고 약속하고, 그 말을 믿은 사람을 마비시킨 다음, "이 한심한 바보야! 그 말을 믿냐? 너는 정말이지 어리석구나!"하고 비웃으며 달아나기도 한다.
이보다 더 못된 제나들의 장난도 있는데, 바로 체인질링이라 불리는 요정들 특유의 악질적인 해코지로 자신들의 아이와 사람들의 아이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제나는 제니소스(xaninos)라 불리는 아이를 낳는다. 다만 모두 여자인 그녀들이 어떻게 해서 아이를 낳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제나들이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자신들의 아이를 안고 갓난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서는 아이를 바꿔치기한다. 아스투리아스의 전설에 의하면 제나들은 아기한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아서, 아기를 낳은 인간 여자의 젖으로 자신들의 아기를 키우려고 그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나들이 훔쳐온 사람의 아기는 어떻게 될까? 잔인하지만, 아스투리아스의 전설에서는 제나들이 사람의 아기를 훔쳐서는 잡아먹는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유로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는 제나들을 위험하고 사악한 속성이 많은 존재라며 불길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빼앗긴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기를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제니소스와 사람의 아기는 완전히 똑같아서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스투리아스의 전설에 의하면, 둘을 쉽게 가려내는 방법이 있다. 일단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달걀 껍데기 몇 개를 불 속에 넣거나 껍데기 안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제니소스가 "나는 100년 전에 태어났지만, 달걀 껍데기를 불에 태우는 이런 황당한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러면 제니노스를 낳은 제나가 곧바로 자신이 훔쳐간 사람 아기를 어머니한테 돌려주고 자기 아이를 데려간다고 한다.
이러한 설정은 북유럽의 요괴인 트롤이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아기를 바뀌치기한다는 내용과 같다. 아마 트롤의 이야기가 스페인 쪽으로 전해지면서 이런 설정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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