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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상식

세계 최초 지폐/징기스칸의 육포/조선건국과 하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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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지폐

중국 북송(960~1127) 시대는 경제가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베트남 남부에서 쌀이 들어왔고 이로 인해 인구가 증가했다. 1000년경에 6000만 명이었던 인구가 1200년경에는 1억 1500만 명으로 늘었다. 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서쪽 내륙에 있던 수도가 대운하 지대로 옮겨졌고 운하를 이용해 각종 식량과 석탄 등의 물자가 운반되었다.

 이런 경제 발전으로 쓰촨 지방에서 철전이 제작, 사용되었다. 하지만 철은 너무 무거워 생활에서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금융업자가 철전을 보관하고 대신 교환권인 교자라는 지폐를 발행해 이를 주로 썼다. 교환권이었으나 실제 돈처럼 사용된 교자는 세계 최초로 발행된 지폐로 인정되고 있다.

 

징기스칸의 육포가루, 보루쓰

13세기 징기스칸의 군대는 중국 대륙, 중앙 아시아, 러시아, 유럽 일대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세웠다. 그 비결은 기동력으로 꼽힌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 기병 1인이 서너 마리의 말을 이끌고 하루에 최대 200여 km까지 이동했다. 게다가 몽골군은 보급 부대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기동력이 더욱 뛰어났다. 징기스칸 군대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당시 유럽에선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징기스칸의 군대가 온다'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보통 군대는 전투병과 이들을 지원하는 보급 부대로 구성된다. 보급 부대의 주요 임무는 특히 식량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몽골군은 병사들 스스로가 먹을거리를 갖고 다녔다. 그것이 바로 안장 아래에 보관했던 육포였다. 겨울에 소를 잡아 살코기를 말려서 잘게 찢으면 육포가 되는 이를 절구에 넣어 갈거나 두드려 가루로 만든 것이다. 이것을 보루쓰라고 한다. 이것은 단백질 덩어리로 훌륭한 영양 공급원인 데다가 보관이 쉽고 2~3년간 보존할 수 있었다. 육포 가루는 물에 타 먹으면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고기수프가 되어주었다.

몽골군은 이 육포를 가죽주머니에 꽉꽉 눌러담아서 허리춤에 달았다. 이 보루쓰에서 고기를 한줌 꺼내서 동복이라고 하는 말 안장 뒤에 있는 휴대용 냄비에다가 물을 붓고 불에 올린다음 풀어주면 졸지에 소고기 수프가 된다. 이런 기발한 식사법은 그 당시 전 유라시아에서 오로고 몽골군만이 하는 방식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시 군대이동의 공통점은 보급부대가 항상 뒤따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보급부대를 족치면 군대는 힘을 잃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병법의 기본공략법 중 하다. 그런데 이런 보급부대의 대원칙을 몽골군은 깨뜨리고 기병 스스로가 보급물품을 완전군장한 채 전쟁터로 나갔기 때문에 보급부대의 지원이 없어서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징기스칸의 광대한 유라시아 원정의 핵심 비결이었다.

 

조선건국과 하조대

강원도 양양의 명소 중 한 곳인 하조대는 기암절벽에 세워진 정자다. 근방에는 하조대 해수욕장, 하조대 등대 등 하조대라는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하조대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조대라는 이름을 해돋이와 관련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하조대는 조선 건국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하조대는 조선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의 성인 하와 조를 딴 정자이기 때문이다.

고려가 쇠퇴해져 나라 안이 어지러운 시기, 문인이던 하륜과 조준은 정세상 고려가 오래 지탱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벼슬을 버린 뒤 양양 지역에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이성계 일가를 만나 1392년 조선을 건국하는 혁명에 함께하게 되었다. 과연 하륜과 조준의 예측대로 이성계는 조선 최초의 왕인 태조가 되었다.

 도한 이들은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인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 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건국 후 두 사람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하륜은 단군 조선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역사를 집대성한 동국사략을 공동 저술했고, 의정부영사가 되어 군정을 개편했으며 좌의정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준은 토지제도를 확립하고 법전인 경제육전을 펴냈으며 좌정승과 영의정 부사를 지냈다. 이 같은 업적을 기려서 정종 때 이들이 은거하던 지설에 머물렀다는 장소에 정사를 세우고 하조대 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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