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차대조표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국민대차대조표를 통해 개인,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별로 얼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전 재산의 75%를 집과 땅, 즉 부동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에 비해 그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인데, 이 같은 현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든,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든, 직원 수가 수십만명이 넘는 글로벌 기업이든 규모와 상관없이 경제 활동을 한다면 모두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일하면서 얼마를 벌어 얼마를 저축했는지 알아야 어디다 돈을 쓸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정 상태를 모르면 집이나 차를 사거나,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등 큰돈이 들어가는 지출을 결정할 수 없다.
정부가 매년 국가 전체의 자산이 얼마인지 조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국의 국부를 조사하는 방식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점점 정교해졌다. 1968년부터 1997년까지는 10년마다 한번씩 하던 국부 조사를 2007년부터는 매년 하고 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덕분에 국부가 증가하는 규모도 함께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국민대차대조표 방식이 도입된 것 2014년부터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대차대조표처럼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의 모든 자산과 부채, 자본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우선 매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의 모든 건축물과 토지, 자동차 같은 운송장비, 도로와 철도 같은 구축물, 공장에 있는 기계류, 지식재산권과 같은 비금융자산의 가치를 더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의 정부, 기업, 가계가 갖고 있는 금융자산을 더한 뒤 금융부채를 빼면 된다. 이 값이 해당년도에 한국이 갖고 있는 국부가 된다.
물론 이는 국민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과정을 매우 간략하게 추린 내용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자산의 가치를 계산해서 더하는 국민대차대조표를 만드는 일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국민대차대조표가 어떻게 만들어지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젖소, 말, 꿀벌과 같은 축산물부터 국군이 갖고 있는 해군상륙함, 기동타격 무기시스템, 그리고 고령토와 운모 같은 광물까지 세부 자산의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부가 이렇듯 매년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국부를 조사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소득이 어떻게 부로 축적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국부, 그러니까 국민순자산은 1경 3,817조 5천억 원이다. 이는 전년 대비 약 5.7%(741조 5천억 원) 늘어난 수치다. 1경 3,817조 5천억원은 한국의 명목 GDP의 8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개인으로 대입해 설명하면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재산이 그 사람이 1년 동안 버는 연봉의 8배인 것과 같다. 2017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국부가 전년보다 741조원 가량 늘어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이다. 토지 가치는 전년보다 461조 9천억원이 늘어 6.6%가 올랐고, 건물은 279조 6천억원이 증가해 전년보다 6.5% 올랐다. 실거래로 토지와 건물 가격이 올랐다기보다는 실물자산의 평가 가격이 상승한 게 큰 폭의 증가를 이끌었다.
1경원이 넘는 금액을 언급하니 너무 큰 숫자라서 얼마나 많은 액수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국민대차대조표는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주체별로 얼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는지를 따로 보여준다. 모든 경제 주체들의 재산을 하나로 더한 값만 보고는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큰 대기업과 정부, 그리고 평범한 한 가구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대차대조표에선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크게 4개로 분류한다. 각각 비금융법인, 금융법인, 일반 정부, 가계 및 비영리단체다.
일반 정부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그리고 산하 기관을 말한다. 금융법인은 은행이나 증권사와 같은 금융사를 뜻한다. 비금융법인은 말 그대로 금융사가 아닌 다른 모든 회사들이 속한 항목이다. 경제학에서 개인을 뜻하는 가계는 비영리단체, 즉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지 않은 단체와 같은 항목으로 묶여 있다. 2017년도 기준 한국의 가계와 비영리단체가 갖고 있는 순자산을 모두 합하면 8,062조 6,500억여원에 달한다.
매년 국민대차대조표가 발표되는 날이면 언론에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가구당 순자산이 얼마인지에 대한 기사를 쓴다. 가계와 비영리단체 몫의 자산을 전체 인구수로 나눈 뒤 평균 가구원 수를 곱한 값인데, 비영리단체가 갖고 있는 자산도 일부 들어가니 하지만 한국인이 갖고 있는 평균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큰 밑그림 정도는 볼 수 있다.
가구당 순자산과 통계의 허수
2017년 국민대차대조표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당 순자산은 3억 8,867억원이었다. 한 가족이 갖고 있는 순자산이 3억 8천만원 가량이라 하면 어떤 이들한테는 많게 느껴지고 어떤 이들에겐 적은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모든 가계와 비영리단체가 갖고 있는 순자산은 약 8,062조원이다. 이를 2017년 추계 인구 5,144만여 명으로 나누면 일단 1인당 순자산이 1억 5,672만원 가량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1인당 순자산을 구한 다음에 2017년 기준 한국의 평균 가구원 수인 2.48명을 곱하면 3억 8,867만원이란 금액이 나온다. 평균 가구원 수라는 건 한국 가구들의 평균적인 가족 구성원 수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5%까지 높아져서 평균 가구원 수가 2.48명에 그치고 있다.
언론에서 말하는 가구당 평균 순자산이라는 건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계산된다. 이 금액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평균값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미국 포브스가 뽑은 한국 최고 부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갖고 있는 재산은 2018년 기준 약 23조원이라 한다. 이 금액은 평균 자산 3억 8천만원씩 갖고 있는 약 6만 가구의 재산과 맞먹는다.
통계의 허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과 통계청, 언론에서 가구당 순자산을 계산하고 이를 기사로 쓰는 건 이러한 평균값이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계가 갖고 있는 순자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동산이 전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 해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은행 등에서 빌린 금융부채를 빼고 계산한 한국 가계의 순자산에서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4%에 달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물자산은 대부분 집과 땅 같은 부동산 자산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평균적으로 전 재산의 3/4이 부동산인 셈이다.
물론 지금은 전체 순자산에서 부동산과 같은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2008년에는 이 비중이 82.9%였는데 2011년에는 79.2%, 2016년에는 75.8%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해외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시기 미국 가계의 순자산에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4.8%에 불과했다. 일본은 43.3%, 영국은 57.5%, 캐나다는 57%였다. 선진국 중에서는 호주가 이 비중이 74.3%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도 60% 중후반대로 높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만 보면 '미국과 일본에 비해선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하고는 큰 차이가 없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통계에 허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세보증금이 누락되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은 거주하고 있는 전세집의 전세보증금은 금융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자금은 금융자산이라기보다는 실물자산에 더 가깝다. 전세집에 사는 댓가로 담보로 잡혀있는 돈이기 때문에 유동성이 거의 없다. 전세보증금을 금융자산이 아닌 실물자산으로 계산하게 되면 한국인이 갖고 있는 재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더 높아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통계청의 '가겨금융 복지조사' 보고서의 세부결과를 분석해보면 한국인의 금융자산이 사실상 제로 가깝다고 설명한다.
부동산이 전체 가계 순자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부동산 투자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을 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정권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의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으니 집값이 오르내리는게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집값이 조금만 올라도 재산이 크게 늘어나니 씀씀이가 커지게 되고, 반대로 집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재산이 크게 줄어드니 지갑을 닫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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