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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

경제 상식 2.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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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물가

 물가를 다루는 기사는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경제 뉴스다. 물가 등락은 우리 피부에 직접 와닿는 경제 현상으로, 포털사이트에서 '물가'라는 두 글자만 쳐다봐도 관련 기사들이 주르륵 뜨는 걸 알 수 있다. 물가를 다룬 기사들은 대부분 우려의 뉘앙스다. '물가가 몇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물가가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면서 장보기가 무서워졌다' 라는 식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물가가 오르면 왜 문제일까? 물가를 이해하기 쉽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의 평균적인 가격 수준'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상품별로 가격이 오르고 떨어졌는지 살펴보지 않는걸까? 굳이 복잡하게 물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상품의 가격 변동을 계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각기 오르내리는 다양한 재화들의 가격을 하나로 합쳐 평균값을 내면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올 수 있을텐데 말이다.

 

물가를 파악하는 이유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물가를 계산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정부가 매달 물가를 측정해 발표하는 이유는 전반적인 상품 가격의 변화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인지 아니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흐름을 파악하는게 물가를 측정하는 목표다보니 몇 개 품목의 가격 변동만을 확인해서는 큰 줄기를 읽어낼 수 없다.

 

 상품별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주기가 크게 다른 것도 평균값으로 물가를 파악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식재료나 음식, 옷, 교통,기름은 일상에서 자주 소비되는 품목들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상품들은 몇 년에 한 번, 아주 길게는 10여 년에 한번 그매되는 상품들이다. 이렇듯 상품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주기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몇 가지 상품만을 갖고는 물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상품들로 대표 품목을 구성하고, 사람들이 해당 상품과 서비스에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에 따라 가중치를 두어 물가를 구하고 있다. 일단 사람들의 소비가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대상으로 대표품목을 구성한 다음, 사람들이 많이 그리고 자주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일수록 물가 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계산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어떤 상품과 서비스 가격 변동을 주로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해당 물가지수의 변동에 주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등 기준도 다양하게 나뉜다. 생산자가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가격을 기준으로 '생산자물가지수', 제1차 도매상의 판매가격이 기준이 되는'도매물가지수', 소비자가 구입할 때 가격을 기준으로 한 '소비자물가지수'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물가지수 중 일반 국민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피부에 와닿는 통게는 소비자물가지수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에서 매달 발표하는데, 통계청이 선정한 460개 대표 품목에 들어가는 상품과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기준으로 작성된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의 기준이 되는 460개 항목은 2016년 말에 확정되었다. 대표 품목은 시대 변화에 맞춰 5년에 한 번씩 바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자들의 소비 취향과 트렌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반형애 대표 품목에 새롭게 추가해야 할 상품이 생기고, 반대로 제외해야 하는 상품도 생긴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이루는 대표품목들을 보면 한국 사회의 소비트렌드가 어떻게 바뀌는지, 평균적인 한국인의 소비행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2016년 개편에서도 시대 변화를 반영해 대표 품목에서 추가되거나 제외된 항목들이 나왔다. 꽁치, 케첩, 잡지, 종이사전 등을 포함해 모두 10개 품목이 2016년 개편에서 빠지게 되었는데, 예방접종비도 무상접종이 확대되면서 대표 품목에서 제외되었다. 2016년에 새롭게 추가된 항목으로는 현미, 블루베리, 아몬드 등 18개 품목이었다.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웰빙 식재료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휴대폰 수리비도 이때 처음으로 소비자물가지수 대표 품목에 포함되었다. 현재 발표되고 잇는 소비자물가지수는 2015년 물가 수준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2015년 가격을 100P로 놓은 상태에서 물가 등락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제외하고 몇 가지가 더 있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고 생활비에서 나가는 비중이 높은 141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채소, 과일, 생선 등 50개 신선식품 품목으로만 구성된 신선식품지수 등이다.

 

 물가안정이 중요한 이유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은 국가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과거를 살펴보면 쇠락기에 접어든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 제국 말기에도 물가가 치솟았고, 비교적 가까운 역사를 살펴봐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역시 살인적인 수준으로 물가가 급등한다.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가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1923년 독일인들이 겪었던 인플레이션은 '과도하거나 지나침'을 나타내는 뜻의 접두사 '하이퍼hyper'를 붙여 '하이퍼 인플레이션' 이라고 불린다. 우리말로는 '초인플레이션'.

 

 당시 독일 물가급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주식인 빵 가격의 변동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918년 한 덩이에 0.5 마르크였던 빵 가격이 5년 뒤인 1923년에는 무려 1천억 마르크가 된다. 환율은 1달러에 4조 마르크까지 솟구쳤다. 돈의 가치가 지폐를 찍어내는 종이의 가치보다도 떨어지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이러한 극시한 경제 불안은 이후 전체주의 나치 정권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이와 같은 하이펴 인플레이션은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엔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IMF가 발표한 베네수엘라의 2017년 물가상승률은 무려 4,300%였다. 1년 만에 물가가 43배나 뛰었다는 뜻이다. 2015년에는 112%, 2016년에는 2,800%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상승률조차 2018년가 비교하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었다. 2018년에는 물가가 169만%가 올랐다.

 

 물가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은 고통 속에 빠져든다. 평균 수준의 월급으로는 계란 하나도 사기 힘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입에 풀칠할 것조차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2018년 11월 유엔난민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나 다른 국가로 이주한 베네수엘라인은 3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국민의 10명 중 1명이 외국을 떠도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베네수엘라는 왜 이 지경까지 경제가 무너졌을까?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양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이다. 정부는 석유를 수출해 얻은 돈으로 국민들에게 각종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원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석유수출 말고는 마땅한 돈줄이 없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급격히 무너져버렸다. 원유가격이 폭락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거 고유가 시절에 내놓은 복지정책을 수정하지 않았던 게 몰락의 큰 원인으로 꼽힌다. 2017년 한 해 동안 베네수엘라인들의 평균 체중은 10kg가량 줄었다고 한다.

 

 경제적 안정과 번영 없이는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각 나라의 정부가 물가 안정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교휸 때문이다. 한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기치로 내세우며 설립되었다. 그래서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라는 설립목적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물가 등락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길래 이렇게 중요한 걸까?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물가 안정이 곧 우리가 사용하는 돈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반대로 물가가 내려가면 같은 물건을 더 적은 돈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돈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뜻이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이 일정한 가치를 유지한다는 믿음이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물가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한 사회 안에서 부와 소득 분배가 불평등해지게 된다. 물가가 상승하면 이미 재산을 많이 갖고 있는 부자는 부를 늘리기가 훨씬 더 편해진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줄어들게 되는데, 정해진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대부분 근로자들은 사실상 소득이 줄어드는 셈이다. 은퇴 이후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금생활자들도 물가가 오르면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에 돈을 저축해둔 사람들도 돈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된다. 아직 내집마련을 하지 못한 무주택자들도 물가 상승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내집마련의 꿈이 더 멀어진다. 

 

 대부분 근로자들이 물가 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줄어들게 되는 반면, 기존에 많은 재산을 갖고 있던 부유층은 한몫 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건물이나 주택, 토지 등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던 부유층은 부동산 가치가 물가 상승과 함께 가파르게 오르면서 더더욱 부유해진다. 그래서 지나친 물가 상승은 부의 분배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를 부추기게 된다.

 

 물가가 오르면 경제 안에서 소비는 늘고 저축은 줄어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갖고 있는 돈의 가치가 줄어들어 은행에 맡기기보다는 지금 당장 소비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저축액이 줄어들면서 기업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는 곧 경제 성장둔화로 이어진다. 물가 상승이 계속되면 근로자들이 받는 급여의 실제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오른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박탈감을 가져다주고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 정도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물가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요약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물가 하락은 경제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을까? 아니다. 물가가 계속해서 하락하면 소비자들은 물가가 더 떨어질때까지 소비를 미루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지는데 지금 당장 더 비싼 돈을 주고 상품을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국가 경제 안에서 소비가 계속해서 줄어든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감소하고, 기업의 생산활동과 투자도 감소하게 된다. 결국 망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일자리는 줄어든다.

 

 기업은 같은 물량의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도 물가 하락으로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에 벌어들이는 돈, 즉 매출이 감소할 수 밖에 없어 점점 어려운 처지에 처한다. 앞서 물가가 떨어졌다는 말은 돈의 가치가 올랐다는 말이라고 했느넫, 기업이나 가계가 갖고 있는 부채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실물자산 가격은 떨어졌는데 숫자로 표시된 부채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사실상 빛의 액수가 올라간 셈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갖고 있던 집을 팔면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물가 하락으로 집값이 떨어져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돈을 빌린 채무자는 부담이 더 커지게 되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기존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여러모로 물가는 큰 폭으로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조금씩 상승하는게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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